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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과 삼국사기 (삼국사기의 현대적 이해)

저작시기 2010.11 |등록일 2010.12.2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김부식에 대한 것과 삼국사기라는 책에 관한 내용입니다

목차

김부식의 생애
삼국사기는 어떤 책인가
삼국사기의 성격
삼국사기의 편찬 배경
삼국사기의 영향
삼국사기에 반영된 김부식의 역사관
삼국사기 창작의도 : 고려와 신라왕실의 혈통동일론 수립
맺음말: 삼국사기의 가치

본문내용

김부식의 생애
김부식의 자는 立之, 호는 雷川, 시호는 문열이다. 본관은 경주이다. 김부식이 속했던 경주 김씨 가문은 신라 왕족의 후손이었으나 향리 자제로 출생했다. 김씨 가문은 고려가 건국되면서 발 빠르게 고려 건국에 가담했고 고려 왕건의 새로운 정치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의 증조부인 김위영은 경주 주장이라는 향리직의 우두머리에 임용되었다. 중앙 정계로 진출하게 된 것은 아버지 김근 대부터였다. 김부식은 김근의 네 아들 가운데 셋째 아들로 위로는 부필, 부일 두 형이 있었고 부의는 그의 아우이다. 4형제는 모두 자신들의 능력으로 과거에 합격하여 중앙관직에 올랐으므로 당시의 포상제도에 의해서 그의 어머니에게 나라에서 매년 40석의 곡식을 내렸다고 한다.
김부식은 이자겸이 인종 초년에 왕의 외조부 겸 장인으로서 참람한 행위를 하고, 예에 어긋난 일을 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하였다. 또한 유가적 현실주의적 사고와 대의명분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기위해 서경천도설을 주장해오던 묘청의 난을 진압했던 출장입상의 정치인이였다. 김부식은 당, 송에서 발달한 고문체의 주창자이자 경학의 대가였다. 그는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경험이 있었으며 유교 경전의 이해도 뛰어났고 고금의 역사와 경학에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학문적으로 유가․불가․도가 사상에 조예가 깊었다.
김부식은 국왕의 신임이 식었고 자신을 두둔해 줄 간관 세력도 축출된 상황에서 사면으로 인해 개경으로 돌아올 윤언이와 한유충의 정치적 보복을 받을 것을 예견하고 정년퇴임 18개월을 남겨 두고 모든 공직에서 사직했다. 인종은 그에게 삼국사를 재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편찬위원 11명을 소집하여 이후 3년 10개월 후인 인종 23년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정사이자 최고의 사서라 할 수 있는 지금의 삼국사기를 탄생시킨 학자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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