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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한복판에 고구려 유민의 독자 왕국

저작시기 1997.06 |등록일 2010.06.2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4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당나라 한복판에 존재했었던 고구려 유민의 왕국에 대한 자료 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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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로써 당 조정과의 갈등은 격화되지 않았으나 번진과의 충돌은 더욱 빈번해졌다. 치청왕국은 성덕번진과 소금 산지인 체주와 덕주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이런 와중에 806년 이사고 마저 죽고 이복동생 이사도(李師道)가 뒤를 이었다. 이 무렵은 치청왕국 뿐만 아니라 중국 조정도 변화가 있었다. 한해 전에 당나라의 순종이 재위 1년을 못넘기고 세상을떠나고 헌종이 즉위했는데 헌종은 각 지방을 배경으로 독자적 권력을 행사하는 절도사를 억압하고 황제권을강화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 임금이었다.

즉위초부터 군소 군벌들 토벌에 나선 헌종은 서기 815년 12월부터는 투항한 다른 번진들을 앞세워 치청왕국의 토벌에 나섰다. 치청왕국의 이사도는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장안에 자객을 보내 번진토벌론을 주장했던 재상 무원형(武元衡)을 암살하는 등 전력을 다해 다양한 방법으로 대응했다. 대부분의 번진들이 당 헌종의 공세에 무너져 치청토벌전에 가담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치청왕국은 고립무원이었다. 그러나 고구려인의 후예 이사도는 정면대결에 나섰다. 결국 당군 및 각 번진들에다 신라인들까지 합세한 공세 때문에 치청왕국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이사도의 수하로 도지병마사(都知兵馬使)였던 유오(劉悟)가 정세의 불리함을 느끼고 이사도를 죽이고 당에 투항했던 것이다. 서기 819년 2월의 일이었다.

군사들에 의해 평로치청절도사로 추대된 지 54년, 이영요를 토벌하고 조주 서주 등을 점령해 15개 주를 손아귀에 넣고 독자권을 행사한 지 41년만이었다. 고구려 유민의 아들로 대륙의 한복판옳 장악한 이절기 일가는 이렇게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간 것이다. 이렇듯이 고구려 유민의 항쟁은 당나라로서는 매우 골치거리였던 것이다. 이정기 왕국도 역사에 나타나지 않던 내용이었으나 최근 소장 학자들의 노력으로 드디어 당나라에서 독자 왕국을 건설한 위대한 우리의 조상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 외에도 재야 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기 시작하고 있는 고구려 유민의 행적을 우리얼에서는 지속적으로 재조명하여 여러분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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