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평가점수A

갑오개혁

저작시기 2009.11 |등록일 2010.05.02 한글파일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2,300원

소개글

갑오개혁의 실시와 그 실시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의 레포트

목차

Ⅰ. 서론
Ⅱ. 1차 갑오개혁
1. 제1차 개혁의 배경
2. 제1차 개혁의 추진세력
3. 제1차 개혁의 내용
Ⅲ. 2차 갑오개혁
1. 제2차 개혁의 배경
2. 제2차 개혁의 내용
Ⅳ. 3차 갑오개혁
1. 제3차 개혁의 배경
2. 제3차 개혁의 내용
Ⅴ. 갑오개혁의 자율성과 타율성
Ⅵ.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갑오개혁은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으로 김홍집내각이 성립된 이후 1896년 2월 11일 고종의 아관파천에 이르기까지 개화파관료들이 당면과제인 대외적 자주독립과 대내적 근대화를 실현하려 했던 개혁운동이었다. 비록 갑오개혁은 외세에 의해 개혁의 계기가 마련되고 그 추진과정에서도 외압이 적지 않게 작용하였지만, 한국근대 역사상 근대화의 기점을 이루는 사건으로서 갑신정변과 독립협회운동을 이어주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갑오개혁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Ⅱ. 1차 갑오개혁

1. 제1차 개혁의 배경
동학농민군의 봉기가 1894년 4월 23일 고부민란을 시발로 전라도 각지로 확산되었다. 5월 10일에 홍계훈이 이끄는 정부군이 황토현전투(黃土峴戰鬪)에서 농민군에게 대패함으로써 정부는 청군의 파병을 요구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더구나 전주성(全州城)마저 함락되자 민영준은 고종에게 청군의 파병을 요청토록 건의하였다. 다른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6월 3일 민영준은 고종에게 청병을 강력히 건의하여 그의 윤허를 받아냈다.
6월 9일 청군은 아산(牙山)에 상륙했다. 일본은 천진조약을 구실로 6월 10일 인천에 상륙하여 오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공사의 지휘 아래 서울로 진군하였다. 청·일 양군이 조선에 진입하자 동학농민군은 이들에게 파병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 전주화약을 체결하고 이미 해산하였지만, 청·일 양국의 군사적 교착상태는 지속되었다.
6월 26일 오오토리공사가 처음 내정개혁안을 제시했을 때, 고종은 개혁이 실시되기를 바라면서도 그에 앞서 일본군의 철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월 10일·11일·15일 등 3차례에 걸쳐 오오토리공사는 서울 남산(南山)의 노인정(老人亭)에서 조선 측 위원들과 회담을 가졌다. 우선 제1차 노인정회담에서, 일본공사 오오토리는 조선정부에 <내정개혁안방안강목(內政改革方案綱目)>을 정식으로 제시하였다. 이에 대해 신정희·김종한 등 조선 측 위원들은 일본의 내정개혁 압력을 거부하려고 노력하였다.
7월 11일의 제2차 회담에서 일본의 강압적인 내정개혁요구에 대해 조선 측 위원들은 이 시한조건부 개혁 권고가 내정간섭이라고 논박하였지만, 그 문서의 접수만은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와 이에 대한 조선 측의 최종 결정을 국왕과 정부에 미루었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