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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주의의 양면성

저작시기 2009.11 |등록일 2010.05.02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3,000원

소개글

이 리포트는 19세기 독일 역사서술의 흐름 속에서 이른바 랑케사학과 그 후세대 학자들이 형성한 프로이센 학파를 비교 분석한 것입니다. 크게 19세기 독일 역사주의가 어떠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후 시대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도 함께 진단해 보았습니다.
5페이지에 각주 22개 치밀하게 달았습니다.(좋은 점수 받았슴다~^^)
아무쪼록 많은 도움 되시길 빕니다..

목차

1. 19세기 독일 역사서술의 흐름
2. 랑케사학의 성격
3. 현실주의적 역사서술과 프로이센 학파
4. 역사주의의 양면성

본문내용

1. 19세기 독일 역사서술의 흐름
19세기 초 낭만주의를 배경으로 역사연구에서의 고유성과 개별성의 강조는 ‘역사주의’라는 독특한 역사사상을 만들어 냈다. 역사주의는 원래 유럽이 대혁명을 경험하기 이전부터 형성되었는데, 비코(Giambattista Vico, 1668-1744)나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 1744-1803) 등의 사상가들에 의해서 그러했다. 역사주의는 이성주의적 세계관을 거부하면서 역사현실이란 끊임없는 생성 속에 있는 것이며, 하나의 역사사실은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고유한 것으로 보는 사상적 흐름이었다. 이것은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에게서 하나의 역사사상으로 확고하게 정립되었다. 그에게서 역사란 스스로 발전하는 개체성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모든 시대는 신에 직접 연결되어 있고 그것의 가치란 그 자체 속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한편 모든 시대라는 개체가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보편성을 그 자체 내에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랑케의 이러한 개체성에 대한 강조는 방법론적으로 사실주의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낳았고 이후 전개되는 역사학 발전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4. 역사주의의 양면성
랑케와 프로이센 학파는 19세기 낭만주의적 역사주의적 역사학이라는 공통의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민족의 역사적 생성과 유기체적 본질로서의 국가에 관한 역사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 역사사상이 그것이었다. 또한 프로이센 학파는 랑케의 후학들로서 방법론적으로도 공유하였다. 하지만 프로이센 학파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적 측면에서 랑케사학과 결별하였다.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랑케사학에서의 객관적이고, 비당파적 성격의 역사서술에서의 탈피이다. 프로이센 학파는 19세기 독일 현실 하에서 시대적 과제에 응답하고자 했으므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역사학을 추구하였다. 역사학이 정치적 도구로서 변모하였고 주관적 서술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둘째, 독일 통일에 대한 방향에 대한 차이이다. 랑케는 낭만주의적 역사서술의 전통 안에서 범유럽적인 보편제국이었던 과거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보수주의적 관점에 머물러서

참고 자료

이상신, 『歷史學 槪論』, (신서원, 1994)
이상신, 『서양사학사』, (신서원, 2001)
Iggers, G. G., 이상우, 김기봉 역, 『20세기 사학사』, (푸른역사, 2007)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역사주의”,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5a313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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