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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의 생애와 작품세계

저작시기 2005.10 |등록일 2010.04.30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김영랑의 생애 및 작품세계를 정리해봤습니다.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목차

1. 이름
2. 출생과 가족
3. 학력
4. 문단 경력
5. 교우관계
6. 결혼과 이성관계
7. 사망까지
8. 작품세계
9. 결 론

본문내용

1. 이름
본명은 윤식(允植)이다. 본관은 김해, 영랑은 아호인데 《시문학(詩文學)》에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2. 출생과 가족


1903년 1월 16일 전남 강진읍 남성리에서 출생했고 다복하고 여유있는 지주의 가정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자라났다. 영랑의 출생 당시 남성리 일대는 `탑골`로 불려졌다고 한다. 농업을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는 농촌으로 이 시인이 나서 자란 집은 대나무 숲이 둘러싸여 있고, 멀리 남쪽으로는 바다가 한눈에 보이며, 가까이는 읍내를 굽어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렇게 다복한 환경에서 티없이 자라난 영랑, 그는 한 생애를 거의 고향에서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는 종호이며, 어머니는 김경무이다. 5남매중 장남이다.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혼인하였으나 1년반만에 부인과 사별하였다.



3. 학력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여 1919년 3·1운동 때에는 강진에서 의거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 6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인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학원에 입학하여 중학부와 영문과를 거치는 동안 C.G.로세티, J.키츠 등의 시를 탐독하여 서정의 세계를 넓혔다. 1923년 여름방학으로 귀국해 있던 영랑은 일본 관동대지진의 재해로 인해 도일하지 못했다. 학업을 중단한 채 고향에 머무른 그는 서울을 자주 왕래하면서 신흥 사회주의적 분위기에 젖어 문학운동에 전력하였다.




4. 문단 경력
1930년 박용철(朴龍喆)·정지용(鄭芝溶) 등과 함께 《시문학(詩文學)》 동인으로 참가하여 동지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쓸쓸한 뫼 앞에〉 〈제야(除夜)〉 등의 서정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어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서정시를 계속 발표하였고, 1935년에는 첫째 시집인 《영랑시집(永郞詩集)》을 간행하였다.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한 그의 시는 정지용의 감각적인 기교, 김기림(金起林)의 주지주의적 경향과는 달리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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