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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근현대사 기행

저작시기 2010.04 |등록일 2010.04.30 | 최종수정일 2018.03.20 한글파일한글 (hwp) | 28페이지 | 가격 1,900원

소개글

근현대사의 역사와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덕수궁과 그 주변지역을 돌아보는데 참고할만한 자료집

목차

수선전도
경운궁
대한문
중화문과 중화전
석어당
함녕전
정관헌
즉조당
석조전
경운궁 주변답사
중명전
구 러시아공사관

본문내용

조선시대 도성 전체의 지도로 19세기에 그려진 것이다. 이 지도를 통해 경복궁과 다른 궁궐의 위치를 비교해 볼 수 있다. 또한 한양의 옛 모습과 도성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경운궁=덕수궁)

덕수궁 자리는 원래 왕궁이 아니고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이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을 갔다가 서울로 돌아왔으나, 전쟁으로 인해 모든 궁궐은 불에 타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옛 월산대군의 사저였던 이 곳을 임시 궁으로 삼고 이름도 ‘시어소’라고 하였다. 선조는 이곳에서 16년간 살다가 승하하셨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1608년 이곳에서 즉위한 후 7년 동안 왕궁으로 사용하였다. 1615년(광해군3)에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이 곳을 경운궁이라 부르게 하였다.
경운궁이 왕이 계시는 정식궁궐이 되는 것은 고종 때이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친일 관료들과 일본의 압력이 거세지자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게 된다. 이것이 ‘아관파천’이다. 1년을 그곳에서 머문 고종은 경운궁 재건사업을 통해 경운궁을 수리하여 이곳으로 돌아온다. 그 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하고 원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가졌다. 이 때가 1897년이다. 1897년부터 1907년까지 경운궁은 파란만장한 대한제국의 궁궐로 그 운명을 함께 했다.
1907년 순종의 즉위와 더불어 궁궐로써 기능을 상실하고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뀐다. 1919년 고종이 함녕전에서 승하한 뒤 일제에 의해 본격적으로 분할, 매각되어 현재는 대한제국 당시의 30% 정도의 규모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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