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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식 , 그가 겪은 민주와 독재

저작시기 2006.04 |등록일 2010.04.28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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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윤 식, 그가 겪은 민주와 독재 ..

1939. 4. 9 경북 대구생, 호화중
1958 경북고등학교 졸업
1964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졸업 (정치학사)
1967 서울대학교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경제학석사)
1988 미국 하와이대학교 대학원 졸업 (농업 및 자원경제학석사)
1990 미국 사우스베일러대학원 졸업 (경제학박사)

1967. 3~1968. 11 서울대학교상과대학조교
1972.3~1976.2 국민대학교 경제학과조교수 (학과장 및 학생처장 역임)
1976.9~1979.3 국제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1979.3~1980.10 제 10대 국회의원
1982.1~1997.3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연구실장, 선임연구위원
2001.4~現 대구경북개발연구원 원장

민주와 독재를 몸소 경험한 일반인들의 사례를 조사하던 중, 나는 윤 식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이제부터 그 분의 생애를 정리해보고 그가 체험한 역사가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윤 식 선생님께서는 1939년 대구에서 태어나셨다. 그는 해방직전에 가톨릭 계통의 유치원을 다녔다. 그의 할아버지께서는 대구지방의 조선국권회복단을 조직하시며 많은 독립운동을 하셨고 그러던 중 많은 옥고를 겪으셨으며 창씨개명을 못하게 하셨다고 한다. 또 다른 어떤 친척은 몽양 여운형 선생이 이끄는 근로인민당에 관련하여 활동하다가 나중에는 소위 보도연맹에 가입되기도 했고, 어떤 외숙은 학생연맹의 간부로서 좌익학생들의 활동을 분쇄하는 일에 용맹을 떨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할아버지의 일화는 선생님께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가까운 분들의 용맹스러운 활약 또한 선생의 활발한 활동에 영향을 주며, 그의 모습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해방이 되고나서 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에 1946년 입학하셨다. 그 때의 학생들은 ‘한글세대 첫 주자’라고 지금도 말한다. 일본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대의 첫 주자라고 한다. 4·19는 상징적으로는 ‘한글세대’가 주축이 된 것이다. 모든 국민이 참여하였지만 특히 대학교 3학년생이 주축이 되었고, 그 3학년은 `한글세대의 첫 주자‘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4·19 이후의 통일운동이나 민족자립경제를 위한 학생운동, 신생활계몽대 같은 것들이 다 그런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참고 자료

내가 겪은 민주와 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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