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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지리 답사보고서

저작시기 2009.04 |등록일 2010.04.25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청주지역 인문지리 답사보고서 입니다.

목차

● 답사목적
● 답사 주요 내용
● 답사보고서
● 느낀점
● 청주읍성 동문터 다녀온 인증사진

본문내용

● 답사보고서
< AM 9:30 중앙공원 >
청주는 삼한시대의 마한의 땅으로 낭자곡으로 불리웠으며 백제시대 때는 상당현, 통일신라 때는 5소경 중 하나인 서원경, 고려 때 청주목, 조선 때 청주군으로 불리워왔다. 우리가 답사를 시작하던 중앙공원은 이전 조선시대 때 핵심적인 도시로 역할을 했던 청주군의 Initial Site이었던 곳이라 할 수 있다. 이전에는 지방행정의 중심지는 주변의 읍성을 쌓아 보호하였다. 서울의 경우에는 수도와 행정의 중심지로서 서울 주변에 도성을 쌓아 보호하였다고 한다. 청주는 현재 읍성과 4문이 철거된 상태로 찾아 볼 수 없으며, 읍성의 터에는 도로를 건설하고 4문의 위치에는 현재 돌비석으로 그 곳에 존재하였다는 짐작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4문의 경우에는 유교적인 덕목인 인, 의, 예, 지, 신 등의 이름을 붙이었고 그 대표적인 예로는 서울의 4대문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청주의 경우에는 청주 목사가 거주하던 거처는 사라졌지만, 행정업무를 담당하던 동헌은 현재 남아있다.
지방의 행정 중심지에는 향교가 설립되어 그 곳에서 문묘의 기능을 행사하며, 3단은 사직단, 성황단, 여단으로 나뉘어 지는데 사직단의 경우에는 토지신에 대한 제사를 지냄으로 그 지역의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한다. 사직단의 경우 존재했던 곳의 지명을 통해 알 수 있으며 현재 청주에는 사직동이 그러한 역할을 행하였던 곳이었다. 성황단은 온갖 신을 모시는 곳으로 작은 마을에서는 성황당이라고 하여 마을의 입구에 마련한다. 청주의 경우에는 주산, 진산(우암산)에 존재했다. 여단은 억울하게 죽은 혼을 달래주는 역할을 하는 곳으로 읍성의 바깥쪽에 위치하며 대개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청주 용화사 근처에 위치한다. 이러한 1묘 3단의 배치는 좌묘우사라고 하여 좌측에는 관아를 두고 우측에는 사직단을 둔다고 한다.
청주의 경우는 행주형으로 배가 떠다니는 모양을 하고있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이동성을 갖고있다 하여, 이러한 이동성을 제한하기 위해 철당간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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