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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탈놀이)에대한 보고서

저작시기 2008.05 |등록일 2010.04.23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700원

소개글

탈춤은 두 가지로 해석되는데, 민속극의 한 종류로서의 ‘탈놀이’와 민속무용에서의 ‘탈춤’이 바로 그것이다. 보통은 전자의 개념에 후자가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인 즉, 둘 다 탈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탈놀이’에는 춤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와 같이 생각한다. 탈춤의 매체에는 탈, 춤, 놀이, 재담이 있는데, 여기에서 춤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탈춤’(해서(황해도)지역. 봉산탈춤, 강령탈춤), 놀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면 ‘탈놀이’,(서울・경기지역. 송파산대놀이, 양주별산대놀이)가 된다. 한마디로 말해 ‘탈춤’은 ‘탈을 쓰고 춤을 중심으로 하는 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계략 이런 내용을 구체화 시킨 것이라 보면 됩니다.

목차

서론

탈춤의 기원
탈춤의 종류
탈놀이 대사의 형식
탈춤마당의 전개 및 표현원리
인물의 유형성
탈놀이에 내포된 사상

춤을 중심으로 (종류 등)
탈을 중심으로 (종류 등)

본문내용

Ⅱ탈춤(탈놀이)
1. 탈놀이(탈춤)의 기원설
①산대희기원설
산대희기원설에 의하면, 산대희에서 산대극(산대도감극)이 생겨났고, 산대극의 지방 분산으로 각 지방의 탈놀음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산대희는 신라시대 이래 조선중기까지 지속되었는데, 놀이의 시기나 목적・놀이판의 분위기에 따라 변화가 많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산대는 채산(彩山)・채붕이라고 하는 가설무대로서, 산과 같이 높은 무대, 비단으로 장식한 다락무대라는 의미에서 붙인 명칭이다. 이 기원설에 의하면 산대희는 신라・고려・조선을 경과하는 동안에 복잡・화려해졌고, 공연도 빈번하였으나, 그 연희자인 반인(伴人들:편놈)이 민간에서 산대놀이 즉, 탈놀음을 시작했는데, 탈놀음의 연기는 규식지희의 계승이고 대사는 소학지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연희자들의 지방 분산으로 각 지방의 탈놀음이 이루어 졌다고 본다.
②기악기원설
기악기원설에 의하면, 백제인 미마지가 중국 남조(南朝) 오(吳)에서 배워 612년 일본에 전했다는 기악이 탈놀음의 기원이라고 한다. 기악의 내용은 13세기(1233) 일본 문헌인 󰡔교훈초󰡕에 소개되어 있는데, 절에서 불사 공양의 무곡으로 연출되던 교훈극으로서 무극이었다. 기악은 소도구・가면의 형태와 색・인물의 역할・무용극적 요소・주제 등 그 내용이 양주별산대놀이나 봉산탈춤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므로 한국 탈놀음은 서역계통의 탈놀음으로 백제인 미마지가 일본에 전한 기악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③제의기원설
-풍요제기원설 : 농경의식설, 풍농굿기원설이라고도 한다. 고대 이래로 농사가 잘 되라고 농민이 거행하던 농경의식이 탈놀음의 기원이라고 본다. 부락굿의 유형은 농악대가 하는 행사, 무당이 하는 행사, 제관이 행하는 행사로 나울 수 있는데, 탈놀음은 농악대 주도의 풍농굿에서 출발하였다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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