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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본 한국역사의 단상

저작시기 2009.10 |등록일 2010.04.22 한글파일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900원

소개글

장보고를 통해 알아본 한국 역사의 단상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해상왕 장보고, 사람들은 그를 ‘해상왕’이라고 부른다. 신라를 넘어 일본과 중국 대륙, 서역을 넘나드는 그의 활약은 ‘해상왕’이라는 이름의 근원이 되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상무역에 뛰어들었던 그의 용기는 정치 쟁탈전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그가 이렇게 해상무역에 뛰어든 것도, 청해진을 설치한 것도 개인적인 의도가 있었겠지만 시대적인 배경을 무시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가 살았던 시대는 무엇 때문에 그가 청해진을 설치하게 하였을까.
그가 살았던 8~9세기는 동아시아의 역사상에서 매우 흥미로운 시기이다. 이 시기에 동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은 중앙집권적 통치체제가 무너지고, 지방의 토호들이 각지에서 자신들의 실력을 쌓아가며 독자적 세력을 형성해 나가던 지방분권적 체제로 변화해 가던 시기였다. 당은 8세기에 접어들어 율령제를 통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는 여러 면에서 그 모순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 모순은 ‘안사의 난’으로 폭발하였다. 결국 9세기말에 이르면 황소의 난까지 일어났고 그리하여 동아시아 세계를 주도해나가던 당은 결국 907년에 멸망하게 된다. 일본의 경우도 비슷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8세기 이후 율령제는 갖가지 모순을 드러내게 되었고, 9세기에 와서는 정치권의 붕괴양상까지 뚜렷해졌다. 중앙에서는 귀족세력의 전횡이 이루어지고 지방에서는 토호들이 세력을 신장하여 각지에서 일어났고 결국에는 쇼헤이·덴기요의 난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한반도의 삼국 중에서 가장 늦게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던 신라는, 7세기 중엽 삼국을 통일하고 당의 율령제를 수용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이룩하였다. 신라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참고 자료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휴머니스트
『역사란 무엇인가』-까치
『5교시 국사시간』-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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