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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말기의 민비와의 대립구도

저작시기 2009.06 |등록일 2010.04.22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흥선대원군의 집권배경, 집권 말기, 민비와의 대립구도, 삼정의 문란에
대하여 정리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삼정의 문란
조세를 감당 못해 도망치는 농민들

흥선군 집권 말년
2차 집권
3차 집권

흥선군의 집권 배경
천주교 박해의 배경

민비와 대원군과의 대립구도의 시작

강화도조약

본문내용

삼정의 문란
조세를 감당 못해 도망치는 농민들
첫째, 전정의 실상에 대해 알아보자, 전정은 토지에 부과되는 모든 조세를 말한다. 이는 전세미, 대동미, 삼수미, 결작 등 네 가지 가본세에 여러가지 부가세를 매기는 수취제도이다. <<목민심서>>에 따르면 그 명목이 40가지가 넘는다.
네 가지 기본세는 토지 1결마다 22.5말을 내게 되어 있다. 기본세의 파행 운영은 먼저 농사를 짓지 않는 묵은 땅에 매긴 것으로 나타난다. 묵은 땅에는 원칙적으로 전세를 면제해 주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 규정을 무시하고 대장에 밝히지 않은 채 전세를 거둬들였다.
당시 묵은 땅이 점차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농민들은 조세 수탈을 견디다 못해 얼마 되지 않은 농토를 버리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도망민이 많게는 한 고을에 70 ~ 80퍼센트에 이를 지경이었다. 따라서 19세기 첫무렵에 등록된 총 경지면적은 145만 결인데 묵은 땅이 그 3분의 1에 가까운 41만 결이었다. 묵은 땅을 다른 농부가 한 뼘이라도 개간하면 그 농부에게 그 옆의 묵은 땅에 해당되는 전세까지 물렸다. 게다가 도망민이 낼 몫의 전세를 거주민에게 몽땅 뒤집어씌우기 일쑤였다. 이처럼 진전의 면세를 인정하지 않고 온갖 불법을 저질렀다.

재해를 입은 토지에 대해서 전세를 덜어 주는 규정인 급재도 무시되었다. 본디 홍수나 가뭄 그리고 병충해 등 자연재해를 입으면 그 피해 정도에 따라 조세를 면제해 주기로 되어 있었지만 19세기에 들어 이 규정은 거의 무시되었다. 그런 탓으로 피해를 입은 농민들은 아예 신고조차 하지 않아 홍수로 논밭이 싹 쓸려가도 면세의 혜택을 한푼도 받지 못하였다. 더러 빈 쭉정이만 거두었다고 신고하면 짚은 소의 먹이나 지붕을 이는 데 쓸 수 있다고 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는 면세전이 늘어갔다. 곧 궁방전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궁방전은 임금의 아들딸이 국가 조세를 대신 받는 수조권을 확보하여 먹고사는 땅이다. 수조권이 다른 곳에 속하게 되면 국가 재정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정조는 궁방전이 확대되자 이 특혜를 철폐하고 왕자와 공주, 옹주들에게 돈을 지급하여 생계를 꾸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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