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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산주의의 태동 및 흥망

저작시기 2010.04 |등록일 2010.04.19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9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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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지워진 역사-일제 치하 조선 공산당
2. 해방 이후의 조선공산당(1) - 건준, 인공 수립까지
3. 해방 이후의 조선공산당(2) - 위기와 몰락
4. 김일성과 박헌영
5. 나가며 - 미제의 간첩과 빨갱이 두목

본문내용

1919년 전국적으로 3ㆍ1운동의 열기가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후 식민지 조선에서는 원시적 형태이지만 급진적인 민족주의, 민중주의적 경향을 띄는 정치운동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서 특히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조선 민족의 미래’에 관한 다양한 고민들이 제기되기 시작했으며 사회주의 사상은 일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유입되었다. 당시에 상해임시정부와 연해주에는 ‘고려 공산당’이라는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은 당 조직이 있었는데 이중 이동휘가 상해에서 건설한 상해파 고려공산당은 엄밀한 의미에서 당조직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활동가 결사로서 볼셰비키로부터 지원을 받으면서 임시정부내에서 통일전선전술을 펼쳤다. 반면 연해주의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은 직접적으로 볼셰비키의 지도를 받는 코민테른의 직속 당 조직이었다.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은 20년대 초반 국내에 공산당을 건설하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전개하였는데 당시 국내에는 가장 주도적이었던 화요회와 북풍회를 중심으로 무산자동맹, 서울청년회 좌파등의 좌파 지식인 결사가 있었다. 결국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화요회는 노동자 농민 대중조직인 고려노농총동맹과 조선청년총동맹을 결성한다. 그리고 이를 지도할 볼셰비키적 지하조직으로서 고려공산청년회와 조선공산당을 결성하게 된다. 조선 공산당의 시련은 이때부터 시작되는데 1925년 11월 일경의 대대적인 검거를 통해 당 중앙과 핵심세포들이 검거되면서 당 조직이 와해된다. 이에 김재봉, 강달영, 권오설등의 잔존 세력이 1926년 6월 제2차 조선공산당을 결성하고 민족진영과 연대해 6ㆍ10 만세운동을 주도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다수의 핵심인자가 검거되면서 또다시 당 조직이 와해된다. 이후 북풍회와 ML파등 비주류 정파가 연합해 제3차 조선공산당을 결성하지만 이도 1928년 2월 핵심인자 28명이 종로서에 검거됨으로서 와해된다. 결국 1928년 6월과 8월에는 춘경원당의 조직이 모두 검거되고 마지막 시도였던 제4차 조선공산당 조직도 1928년 7월에 모두 체포됨으로써 4차에 걸친 조선공산당 재건 투쟁은 무산되고 만다. 1930년 이후부터는 일본이 군부 쿠데타을 통해 군사적 파시즘 체제로 이행하면서 치안유지법등의 사회주의자들을 타겟으로 사상, 활동 탄압이 극심해진다. 1930년대 조선공산당 재건 활동의 핵심은 이재유,이현상,김삼룡의 경성 트로이카와 박헌영을 축으로하는 경성 콤 그룹이었으며 이들의 활동은 1934년 이재유가 검거되기까지 일제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참고 자료

1. 심훈, ‘박군의 얼굴
2.‘제4차 조선공산당재건위의 이재유를 평가하며’, 조선사회과학대사전,1948.
3.‘1930년 일제 순사의 수기’, 「내일을 여는 역사 18호」에서 재인용. 서해문집편집부, 2004.
4. 일경의 검거 지침 中.
5. 조선총독부 내부 문건.
6. 김산의 옥중시, ‘한해 동지를 추모하며’
7. 조선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 1937년 4월30일자.
8. 한국현대민족민주운동사, 서중석, 역사비평사 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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