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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을 읽고...

저작시기 2009.10 |등록일 2010.04.17 한글파일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정치, 경제와 같이 문화에도 세계적으로 분할된 중심부와 주변부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예전부터 충분히 인식되어 온 사실이다. 대중문화에서부터 시작된 문화 정복주의는 어느새 문화 전반에 걸쳐 그 경계를 공고히 하는 중이다. 그리고 전 세계의 문화 소비자들은 문화적 담론의 중심인 미국과 유럽, 그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와 독일의 문화를 소비하고 다시 재생산한다. 그러한 까닭에 포르투갈 출신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일면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화적 주변부로 불릴 수 있는 포르투갈 작가의 작품이 지구 반대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작가의 노벨상 수상 경력이라는 이력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400여 페이지에 걸친 장편 소설을 그야말로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그만큼 흡입력 있는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모든 시민들의 눈이 먼다는 설정과 상상력이 독특했다. 문체 또한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예사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독특하고 설득력 있는 소재와 지루하지 않는 서사의 방식이 맞물린 작품을 읽는 과정은 언제나 그랬듯 즐거웠다.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느 도시에 모든 시민들이 동시에 눈이 멀게 된다’라는 간단한 구조를 기본에 두고, 소설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눈이 먼 까닭에 도시의 기능은 정지되고, 질서는 무너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마치 폐허와도 같은 암흑 속에서 본능과 이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소설을 읽는 내내, 어쩌면 인간의 문명과 교양 통틀어 이성이라 불리는 것들은 마치 백사장의 모래성처럼 굉장히 미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심리학적 용어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슈퍼에고(superego)의 제어를 통해 억제된 상태에 놓여있는 이드(id)가 사소한 충격에도 그 끝없는 광기를 표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리 속을 휘저었던 것이다. 작품에서 내내 묘사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욕망과 욕구의 무분별함과 무질서였다. 질서와 규칙을 상징하는 눈(eye)이 멀고 그로 인해 결국은 스스로의 본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소설 속 인물들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위적 장치들이 얼마나 미약한가를 의미하는 소설가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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