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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학- 무신자

저작시기 2009.10 |등록일 2010.04.16 파워포인트파일MS 파워포인트 (pptx) | 17페이지 | 가격 2,500원

목차

무신자
갑인자, 수어청
무신자의 특징
무신자 병용한글활자
무신자 병용한글활자본
사주갑인자본
서지학적 의의

본문내용

이 활자는 1668년(현종 9)에 수어청(守禦廳)에서 김좌명(金佐明)이 갑인자체(甲寅字體)를 개주(改鑄)한 것이다.
대자(大字)는 6만 6100여 자(字), 소자(小字)는 4만 6000여 자이다.
교서관(뒤에 규장각으로 편입)겨진 다음 교서관활자, 또는 운각활자(芸閣活字)라고도 하여, 이 활자는 무신자·교서관활자·운각활자 3개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글자의 크기는 1.4×1.6cm이다.
무신자란?
조선 세종 16년(1434)에 갑인자를 만드는 데 사용한 글자본. 《효순사실(孝順事實)》, 《논어》 따위의 필적을 본뜬 것이다.
세종 16년(1434,갑인년) 갑인자(초주갑인자)
선조 13년(1580,경진년) 경진자(재주갑인자)
광해군9년(1617,무오년) 무오자(인자)
현 종 9년(1688, 무신년)- 무신자(사주갑인자)
병조판서 겸 호조판서 김좌명 이 주조한 동활자.
획이 굵고 강직한 인서체(印書體)인 것이 특징이며, 세종이 우리의 글자를 제정하고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인 점에서 그 의의가 큼
갑인자
조선후기 5군영(五軍營) 가운데 하나로 1626년(인조 4) 서울 동남쪽의 방어선인 남한산성을 개축하고 이 일대의 방어를 위해 설치되었다.
처음에는 경기병사겸 총융사가 관할하였으나 병자호란 이후 군영으로 독립하여 수어사(守禦使)를 두었다.
수어청
이 활자도 개주갑인자로서는 정교롭지 못하나 무오자보다는 박력이 있으며, 영조 말기까지 백여년 동안 사용되어 그 인본의 종수가 매우 많다.
오래 사용되었기 때문에 초기에 찍은 책은 인쇄가 깨끗하지만, 뒤에 찍은 것은 활자가 닳고 이지러지고 목활자가 많이 섞여 인쇄가 정교하지 않은 편이다.
이 무신자와 함께 한글활자가 다시 만들어져 국역본의 인출에 병용되었음도 특이할만하다.
무신자의 특징
판심 위아래의 내향어미에 굵은 3엽화문
전기와 후기의 인본이 인쇄상태가 서로 다름
>이유 : 오랜 기간에 걸쳐 이용, 현종~숙종 전기에 인출된 책은 인쇄가 정교하지만, 그 뒤에 나온 책은 부분적으로 보주가 이루어졌고, 특히 영조 연간에 나온 책들은 활자가 많이 닳고 이지러졌다. 글자 획도 매우 가늘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나무활자가 적지 않게 섞여 인쇄가 조잡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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