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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와 이승만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10.04.16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김구와 이승만의 인물 비교

목차

1.선정이유
2.각 인물에 대한 소개(시대상황을 고려)
3. 라이벌 입장에서 라이벌보기
인물 조사 후 나의 소감

본문내용

2.각 인물에 대한 소개(시대상황을 고려)
먼저 김구에 대해 소개 하도록 하겠다.
김구는 고종 13년(1876) 8월 황해도 해주군 기동에서 안동김씨인 김순영과 곽낙원 사이에서 7대 독자로 태어났다. 이 때 그의 집안은 매우 어려웠다. 그것은 그의 선조 중에 인조반정 공신이었다가 후에 조선이 명의 연호를 쓰고 있다고 청나라에 밀고한 혐의로 처형당한 김자점이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그의 집안은 멸문의 화를 당하고 그 일부가 해주로 내려와 은거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집안은 어렸을 때부터 향호들의 압박과 수모를 받아야만 했다.
그 후 그는 정식교육을 받지 못하고 서당에서 글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항상 우등을 하였다고 한다. 1890년 15세에 과거에 응시했으나 실패하였고 1892년에도 우리나라 최후의 과거로 임시시행되었던 경과를 보기위해 해주에 갔으나 당시의 부패한 현실에 실망하고 다시 낙향하였다. 17세 때에는 ‘손무자’‘육도’‘삼략’등의 병서를 독학하였다. 18세 때에는 동학당에 가담하여 접주가 되었고 이름을 창암에서 창수로 고쳤다.
그는 탐관오리를 숙청하기 위해 해주성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구월산으로 피신하였다. 이 때 바로 안태훈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안태훈은 안중근의 부친으로 당시는 관군을 도와 동학군을 토벌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구의 이름을 듣고 그를


3. 라이벌 입장에서 라이벌보기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김구와 이승만은 같은 시대에 태어나 일제의 암울한 시기에 한국의 독립을 위해 역할을 다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양자는 그 성격이나 정치적 신념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김구는 자신이 신학문을 많이 신학문을 많이 공부하지 못했으며 천한 상놈의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겸손해 하였다. 그것은 임시정부에서 경무국장 발령이 났을 때 이를 한사코 거절하면서 문지기를 자원한 예에서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승만을 만날 때는 한 살 차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형님’이라 불렀다.
반면 이승만은 자신이 왕족의 혈통을 받은 양반가문 출신이며 박사라는 것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위에 누가 있는 것을 싫어하였다. 앞서 든 대통령을 자칭한 예에서도 알 수 있고 동지들과 협조체제보다 분열과 독립을 거듭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가문과 성격차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독립노선도 달랐다. 김구는 철저한 무쟁투쟁주의자였지만 이승만은 외교제일주의자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의 정국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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