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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일본의 화장실 문화에 대한 조사(보고서) 발표

저작시기 2009.10 |등록일 2010.04.14 파워포인트파일MS 파워포인트 (ppt) | 41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사람들의 생활수준 향상 및 문화적 욕구가 상승함에 따라 단순히 생리적 욕구의 해소 장소가 아닌 삶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으로 인식이 전환되고 있음.
더욱이 환경적 요인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요즈음에는 생활환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며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써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 화장실은 더 이상 인간의 원시적이고 생리적인 배설욕구만을 해결하는 장소가 아니라 목욕도 하고 세탁도 하는 생활 공간, 신문과 책을 읽는 문화 공간, 사색과 명상의 창조 공간으로써 우리의 얼굴, 의식수준, 문화수준의 바로미터임.
중국의 화장실
문화
중국 화장실의 역사
남아 있는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한(漢)나라 시대의 소변 항아리. 고대 중국사람들은 이 소변 항아리를 호자(虎子)라 칭함. 그 유래를 살펴보면 옛 중국에는 린(麟)이라는 상상의 동물이 있었음. 겉모양은 실재하는 기린과 흡사하지만 사람들은 이 상상 속의 동물을 짐승의 왕으로 추앙했음. 그들은 기린이 나타나는 것을 성인이 탄생할 징조라고 믿었고 이 성스러운 짐승은 호랑이가 엎드려 고개를 들고 입을 벌리면 그 속에 오줌을 누었다고 함. 이 전설의 영향으로 소변기는 호랑이의 머리 모양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호자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
중국의 변기
주나라(周, BC 1027∼771) 시대에는 위유(威宥)라 칭한 변기가 있었음. 위(威)는 호자와 같은 변기를 뜻하는 자이고, 유(宥)는 구멍을 팠다는 의미로서 구멍이 파진 모양의 변기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한나라(漢, BC 202∼AD 8)의 무제(武帝)는 옥으로 된 변기를 사용했으며 일이 끝나면 시종(侍從)이 뒷처리를 하였다고 함. 무제는 자신의 변기를 두는 곳을 헌중(軒中)이라 하였음. 이때 헌(軒)은 나중의 칙(厠)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음.
옛날 중국 사람들은 또한 규방(閨房)마다 변기를 두고 이 그릇을 청유(淸鍮)라고 불렀음.
삼국 위나라(魏, BC 220∼265) 시대에는 나무를 파서 변기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현대 중국 가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변기인 마통(馬桶)의 시초가 되었음. 이 변기는 낮에 사람들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 보관되었다가 밤에는 침상 옆에서 사용되었음. 진(晉)나라, 당(唐)나라 시대의 궁정과 귀족 부호들은 일상 생활이 화려해서 변기도 모두 칠보(七寶)로 장식했음.
궁중의 변기

목차

없음

본문내용

사람들의 생활수준 향상 및 문화적 욕구가 상승함에 따라 단순히 생리적 욕구의 해소 장소가 아닌 삶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으로 인식이 전환되고 있음.
더욱이 환경적 요인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요즈음에는 생활환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며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써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 화장실은 더 이상 인간의 원시적이고 생리적인 배설욕구만을 해결하는 장소가 아니라 목욕도 하고 세탁도 하는 생활 공간, 신문과 책을 읽는 문화 공간, 사색과 명상의 창조 공간으로써 우리의 얼굴, 의식수준, 문화수준의 바로미터임.
중국의 화장실
문화
중국 화장실의 역사
남아 있는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한(漢)나라 시대의 소변 항아리. 고대 중국사람들은 이 소변 항아리를 호자(虎子)라 칭함. 그 유래를 살펴보면 옛 중국에는 린(麟)이라는 상상의 동물이 있었음. 겉모양은 실재하는 기린과 흡사하지만 사람들은 이 상상 속의 동물을 짐승의 왕으로 추앙했음. 그들은 기린이 나타나는 것을 성인이 탄생할 징조라고 믿었고 이 성스러운 짐승은 호랑이가 엎드려 고개를 들고 입을 벌리면 그 속에 오줌을 누었다고 함. 이 전설의 영향으로 소변기는 호랑이의 머리 모양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호자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
중국의 변기
주나라(周, BC 1027∼771) 시대에는 위유(威宥)라 칭한 변기가 있었음. 위(威)는 호자와 같은 변기를 뜻하는 자이고, 유(宥)는 구멍을 팠다는 의미로서 구멍이 파진 모양의 변기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한나라(漢, BC 202∼AD 8)의 무제(武帝)는 옥으로 된 변기를 사용했으며 일이 끝나면 시종(侍從)이 뒷처리를 하였다고 함. 무제는 자신의 변기를 두는 곳을 헌중(軒中)이라 하였음. 이때 헌(軒)은 나중의 칙(厠)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음.
옛날 중국 사람들은 또한 규방(閨房)마다 변기를 두고 이 그릇을 청유(淸鍮)라고 불렀음.
삼국 위나라(魏, BC 220∼265) 시대에는 나무를 파서 변기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현대 중국 가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변기인 마통(馬桶)의 시초가 되었음. 이 변기는 낮에 사람들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 보관되었다가 밤에는 침상 옆에서 사용되었음. 진(晉)나라, 당(唐)나라 시대의 궁정과 귀족 부호들은 일상 생활이 화려해서 변기도 모두 칠보(七寶)로 장식했음.
궁중의 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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