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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이해]화성행궁을 다녀와서

저작시기 2009.12 |등록일 2010.04.13 한글파일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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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가을답지 않게 햇빛은 아주 강하고 따가웠다. 행궁앞 신풍루의 넓은 광장은 더욱 그 햇살을 강하고 뜨겁게 비추는 것 같았다. 마치 조선의 제2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정조대왕의 행궁이라는 것 을 아는 것처럼.

그의 왕으로의 인생은 찬란한 조선 문화의 업적을 남겼지만 그에 유년은 굉장히 불행하였다.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뒤주 속에 갖혀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하였고, 그의 아들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과거의 상처를 않은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희생시킨 붕당 정치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힘썼다. 그래서 영조 이래의 기본정책인 탕평책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보다 적극적인 탕평정책을 폈다. 이것이야말로 아버지에 대한 효도를 다하고, 왕권강화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른 나라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탕평책을 통하여 정조는 당파 간에 불필요한 시비 논쟁을 중지시키고,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데 시비 문제를 적용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당파에 구애됨이 없이 ‘맑고 준엄한 의론을 지키는 인물’들을 등용하고 문벌 집안의 사적 이익을 제한하였다.

정조는 재주와 학문이 있으면 출신 지역과 신분에 관계없이 인재를 등용했다. 그동안 차별을 받아오던 서북 지역 출신과 서얼 출신 인재들도 고루 썼다. 300년 동안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일이라고 평가받은 영변 출신 이응거의 한성부판윤 임명과 이덕무 ․ 유득공 ․ 박제가 같은 탁월한 재능을 가진 서얼 출신을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한 것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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