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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의 경제

저작시기 2010.04 |등록일 2010.04.12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고려후기의 농장과 상업 그리고 수공업등을 통해 고려후기의 경제 상황대해서 알아 볼 수 있다

목차

1. 농장의 성립과 구조
1) 농 장 의 배 경
2) 농 장 의 성 립
3) 농장경영의 주체
4) 농장의 폐해 개혁

2. 수취제도의 변화
1) 조 세
2) 공부와 부역

3. 농업기술의 발전
1) 농업의 발전
2) 목면의 재배

4. 수공업과 염업
1) 수 공 업
2) 염 업

5. 상업과 화폐
1) 국 내 상 업
2) 대 외 무 역
3) 화폐의 유통

본문내용

1. 농장의 성립과 구조
※ 민전 : 고려전기의 백성들이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토지
전시과 : 관료들이 국가로부터 관직 복무의 대가로 받은 토지

1).농장의 배경
전시과는 원래 관직에서 물러나면 국가에 반납해야하는 토지이지만 욕심 많은 관리들이 그 직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원칙을 지키지 않고 퇴직 후에도 전시를 계속 가지고 있는 경우가 발생, 고려 중기 이후 몇몇 권세 있는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는데 특히 왕실의 외척가문이었으며 고려인종의 외척었던 이자겸이 대표적이다.
고려 후기에 농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고려 토지제도의 전형인 전시과 제도가 후기로 갈수록 문란해지는 모습과 맞물려 있는 현상이다.
고려후기에 농장이 등장하게 된 계기는 12세기 이후 수리사업의 발달에 따라 경작지를 넓혀 갈 수 있는 개발 기술을 축적하였고 새로운 종자가 보급되었으며 농업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형성되었던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생산력이 향상됨에 따라 수탈관계에서의 인간의 노동력에 대한 지배의욕보다 토지에 대한 지배의욕이 점차 큰 비중과 의미를 가지게 된 것
무신정권에 뒤이은 무신들의 집권과 사회질서의 변화, 몽골과의 오랜 항쟁 결과 버려졌거나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토지가 늘어났던 것에 힘입어 토지를 집적 할 수 있는 세력가들은 자기 소유의 경작지 확보에 힘을 기울이게 된다.
농장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것은 노비와 처간으로 불리던 양인전호, 이들은 농민층 몰락에 반강제로 지위격하를 감수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국가의 공민으로 남아있을 때 보다 경제적 부담이 적었기 때문에 농민 스스로가 농장주인 세력가들에게 토지와 몸을 의탁하는 경우도 있었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19』,1996
洪承基,『高麗社會經濟史』,2001
한국중세사학회 『고려시대사강의』1997
박용운, 이정신, 이진환 외 공저,『고려시대 사람들이야기』2,신서원,2002.
김종수 외 ,『한국사강의 』, 한울아카데미,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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