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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답사 보고문

저작시기 2008.12 |등록일 2010.04.09 한글파일한글 (hwp) | 16페이지 | 가격 3,000원

목차

1. 답사 전날
2. 10. 29 수 답사 당일
3. 10. 30. 목 이틀째
4. 10. 31. 금 삼일째
5. 후배에게 남기는 이야기

본문내용

10. 30. 목 이틀째
6시, 일어나 세면하였음. 다들 널부러져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 대충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는데 앞에 어제 으르렁거린 사람이 있길래 어젯밤 일을 물어봤더니 다시 으르렁 거린다.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7시 18분, 짐을 꾸려 출발한다. 쪽배가 떠 있는 구름낀 해변이 쓸쓸하게 아름다웠다. 26분, 보길대교를 통과해 28분에 윤선도가 병자호란 때 노복을 이끌고 강화도로 향하다 임금 항복 소식을 듣고 세상을 포기하고 제주로 가려다 중간에 눌러앉아 조성했다는 세연정에 도착했는데 본디는 표받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만 너무 이르게 온 탓인지 사람도 없고 진입금지 라인도 닫혀 있기에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다들 넘어갔다. 아침이라 그런지 세연정에는 우거진 나무 사이로 새소리가 가득했다. 입구 바로 앞엔 수위조절용 돌다리- 일명 굴뚝다리라 불리는 판석보가 있었다. 판석보에서 눈을 돌리자 양 옆으로 춤꾼들을 모아놓고 춤추게 만들었다는 동대, 서대가 있었다. 설명에 따르면 춤을 투며 돌면서 정상에 이르게 나선형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고 하는데, 하지만 큼지막한 동백나무가 그 위에 자라고 있어 한번 올라가 보려던 계획은 전면 철회해야 했다. 예전 답사문에선 그 위에서 춤을 추었다 했는데, 거짓말이었던 건가.
남도쪽이 꽤나 가물었다고 들어서 바짝 마른 연못 바닥이나 보다 갈 줄 알았는데 회수담엔 그래도 물이 있어 연잎이 잔뜩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위사이를 흙으로 매워 만든 배홍교, 옥소대 과녁으로 활 쏘았다느 사투암, 뛸듯한 황소모습이라는 흑약암 등 과연 우리나라 원림 중 최고라 손꼽히는 곳인 만큼 신경 써 조성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났다. 다만 본래의 5천평이나 되던 규모가 훼손되어 겨우 1500평이 남아있고, 지금 담장으로 서 있는 것은 부서져 흩어진 돌조각들을 그러모아 세워놓은 것이라 하였는데, 세연정 바로 옆에 초등학교가 붙어있는 모습에서 그러한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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