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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중인

저작시기 2009.12 |등록일 2010.04.06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조선후기 중인에 대해서 쓴 글입니다.

목차

Ⅰ. 서론 4)中人의 성장 및 발전
Ⅱ. 본론 4-1 조선전기 技術官僚의 身分
1)中人의 槪念 4-2 조선후기 技術職 中人의 家門
2)中人의 構造 및 性格 4-3 中人들의 限界
3)中人의 形成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전근대시대를 통하여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사이의 중간계층은 항상 존재하고 있었지만, 신분개념으로 中人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 즉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이다. 이 때의 中人은 좁은 의미의 中人과 넓은 의미의 中人으로 구분된다. 좁은 의미로는 주로 중앙의 여러 기술관청에 소속되어 있는 譯官·醫官·律官·算官·畵員 등 기술관원을 총칭하였다. 이들은 雜科 시험에 합격하여 선발된 기술관원이거나 잡학 取才를 거쳐서 뽑힌 기술관원으로서 모두가 東班 소속의 관원이었다.
넓은 의미로는 중앙의 기술관을 비롯하여 지방의 기술관, 그리고 庶孼, 중앙의 胥吏와 지방의 鄕吏, 土官·군교 ·교생 등 여러 계층을 포괄적으로 일컬었다. 이 넓은 의미의 中人은 조선사회의 구성상 중간자계층으로 양반과 양인 사이에 존재하는 신분층이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양반 사대부 계층에 비하여 차별대우를 받았으며, 신분과 직업은 세습되었다.
中人은 人口上의 비중은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그들이 갖춘 敎養과 전문적 지식이 常漢에 비해 높기 때문에 政治的∙文化的 영향력이 매우 컸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조선의 中人계층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Ⅱ. 본론
1) 中人의 槪念
양반에는 미치지 못하고 양인보다는 우위에 있던 중간신분층이다. 조선초기에는 中人이라는 용어가 반드시 신분개념에만 국한되어 쓰인 것은 아니다. 中人이 신분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중후기에 이르러서이다. 中人이라는 신분 개념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었는데 하나는 서울 중심가에 살던 기술관을 총칭하는 협의의 中人과 향리․서얼․토관․장교․역리․郵吏 등의 행정실무자들을 칭하는 광의의 中人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中人이라는 계층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7세기 이후부터다. 中人을 구성하고 있는 技術官이나 鄕吏∙校生 등은 물론 그 이전 시기에도 존재했지만, 그들을 中人으로 부른 일은 없었다. 中人명칭의 성립은 바로 中人계급형성과 시기적으로 맞물린다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中人이라는 칭호는 그렇게 불릴만한 집단화된 社會勢力이 있음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참고 자료

본문내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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