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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 로마의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

저작시기 2010.04 |등록일 2010.04.06 한글파일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로마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정리

목차

<로마의 기원>

<공화정 로마>

<로마의 대외발전>

<로마의 변화와 개혁>

<제정의 성립과 발전>

<제정 후기 - 로마의 몰락>

본문내용

[로마의 건국전설]
리비우스(Livius), 디오도로스(Diodoros), 디오니시오스(Dionysios) 등의 고대 史家등에 의한 서술은 정확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아우구스투스 대제때의 대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지은 서정시 「에네아스」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건국전설이 전해진다.
그리스 여신 아프로디테(로마의 Venus)의 아들 아에네아스(Aeneas)는 트로이 전쟁 후 라티움의 티베르 江口에 도착하였는데, 당시 라우렌툼(Laurentum)王 Latinus는 그에게 거주를 허용하였다. 왕은 딸 Lavinia응 아에네아스에게 결혼시키고자 하였는데, 당시 Rutuli王 Jurnus는 Lavinia를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그와 아에네아스간에는 싸움이 벌어졌다. 아에네아스는 에트루리아인들의 도움을 받아 Jurnus를 패퇴시키고 Lavinium市를 건설하였다. 그의 후손은 알바(Alba)에 도시를 건설하여 이후 300년동안 이 지방에 군림하게 되었다. 알바王 Procas 때에 이르러 형제 사이에 반목이 일어났다. 아물리우스(Amulius)는 형인 누미토르(Numitor)를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였다. 뒷날의 걱정거리를



로마의 비효율적인 재정제도는 경제적 쇠퇴를 초래하였으며 국방과 군사적 무정부상태는 고율과세, 화폐가치 하락, 강제징발과 강제노동의 확장 등을 초래하였다. 체제강화는 더욱더 강력한 행정과 탄압조치를 필요로 하였으며, 특히 도시민의 자유가 억압되었다. 경제적 지방분권도 또 다른 하나의 제국쇠퇴의 요인이 되었다. 지역에 따라 각각 독자적 기술을 발달시켰으며 생산품은 지방이나 전국적 시장에 출하되었다. 육상 및 해상 교통망은 비교적 발달되었으나 운송수단은 빈약하여 물품의 상호교류는 어려워졌고 정치적 혼란으로 그 곤란은 가중되었다. 이러한 경제적·정치적 변화와 관련하여 토지의 집중적 소유경향이 두드러졌고, 대농장은 노예 또는 반예속적인 소작인이 경작하였다. 한때 로마의 강점이었던 자유농계급은 예농(隸農)의 지위로 떨어졌다. 이 경향은 이미 그라쿠스 형제시대(133∼121 BC)에 나타난 바 있었고 로마제정 후기에 일반화된 대토지제도는 경제적인 지역화를

참고 자료

"서양사 총론" 차하순
"세계사 총론" 차하순
"로마공화정 위기론" 지동식
"로마인 이야기Ⅰ"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Ⅱ-한니발 전쟁" 시오노 나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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