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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최치원이 중국으로 간 까닭은”

저작시기 2010.04 |등록일 2010.04.04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한국사]최치원이 중국으로 간 까닭-- 신라의 골품제와 6두품에 관하여 정리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 최치원이 중국으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Ⅱ. 본 론
1. 골품제란 무엇인가?
2. 골품제의 구조와 모순
2-1) 골품제의 구조
2-2) 골품제의 모순
3. 6두품은 누구인가?
4. 신라의 멸망과 6두품

Ⅲ. 맺음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 최치원이 중국으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여 대외적으로 강력한 국가로 부상하였지만 사람의 신분상승을 제한하는 골품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신라의 골품제는 인도의 카스트제도처럼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급기야 반골품세력에 의해 국가전복의 사태까지 맞이하게 된다. 특히 최치원은 신라의 대표적인 6두품 세력으로, 그가 12세의 어린 나이로 중국에 건너가 유학생활을 했다는 것은 신라의 신분제도에 많은 한계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신라의 골품제가 어떠한 한계를 지녔기에 최치원은 어린 나이에 중국으로 건너갈 수밖에 없었을까? 지금부터 신라의 골품제와 6두품의 관계를 중심으로 골품제의 구조와 모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Ⅱ. 본 론
1. 골품제란 무엇인가?
골품제도는 신라 때 혈통의 높고 낮음에 따라 관직 진출, 혼인·의복·가옥 등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규제를 한 신분제도를 말한다. 신라는 고대국가 형성과정 중 족장세력을 흡수·편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신분체계를 마련하게 된다. 이것은 왕족을 대상으로 한 골제와 여타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두품제로 구분된다. 신라는 경주에 자리 잡은 사로국의 6부를 중심으로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복속시키면서 성장하였다. 그 과정에서 소국의 지배층 가운데 일부를 경주로 이주시켜 지배층인 6부에 편입시키고, 다른 일부는 원거주지의 촌주로 삼아 복속지역 토치에 이용하기도 했는데 이 때 작용한 신분제도가 골품제였다. 이는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관등제와 직결되어 있기도 하였다.

2. 골품제의 구조와 모순
2-1) 골품제의 구조

<이원적 관등체계>
┌ 왕경인은 경위제 ⇨ 17관등의 경위: 골품제
└ 지방인은 외위제 ⇨ 11등급의 외위: 골품제 불포함

신라의 관등제는 경위와 외위의 이원적 체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골품제의 적용을 받은 경주인들은 중앙관직에 진출하여 경위를 지급받았다. 반면에 지방인들은 골품제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채 중앙정계에 진출하지 못하고 외위만을 받았다. 골품제는 모두 8개의 신분층으로 구성되었다.

참고 자료

이종욱,『신라골품제연구』, 일조각,1999
이병도,『원문 삼국사기』, 을유문화사,1996
이종욱, 『신라의 역사1』, 김영사, 2002
이종욱,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김영사, 2001
이기백, 『한국사 신론』, 일조각, 2000
이기백․이기동, 『한국사강좌』, 일조각,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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