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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의복, 기모노 문화

저작시기 2010.03 |등록일 2010.04.03 파워포인트파일MS 파워포인트 (ppt) | 24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일본의 의복, 기모노 문화의 역사적 배경과 종류에 따른 리포트

목차

-기모노의 의미와 유래

기모노의 역사

기모노의 액세서리

기모노 룩

본문내용

1. 원시(原始)시대
의복이라고 해봐야 고작 천에다 목부분에 구멍을 뚫어 입던것이 원시시대에 와서 비로소 옷다운 형태를 갖추게 된다. 원시시대의 복장은 하니와(옛날 무덤의 주위에 묻어주고 찰흙으로 만든 인형이나 동물)로 추측할 수 있는데 여성의 의상은 키누모(衣裳), 남성은 키누바카마(衣袴) 라는 옷을 입었다. 웃옷의 왼쪽 여밈과 허리에 두른 띠가 특징이다.
2.아스카(飛鳥)시대
당나라의 옷과 염직 기술이 들어와 불교가 전해지면서 당나라 풍의 복식과 염색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성은 양 소 매가 긴 단기누(短衣)를 입고 모(裳-옛날에 귀족이 정장을 입을 때 하카마 위에 입던 옷)를 한 장 혹은 두 장을 입었다. 그 위에 세시(背子)라는 조끼와 같은 것을 입고 어깨에는 히레(比-귀부인이 정장을 입을 때 어깨에 드리운 길고 얇은 천)라는 스카프를 걸쳤다.
키누모 키누바카마
3. 헤이안(平安) 시대
헤이안시대 에는 일본 풍토에 적합한 기모노가 만들어진 시기로, 의복도 귀족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쥬니히토에 라는 아주 화려한 옷을 입고 머리 모양을 앞머리를 좌우로 부풀려 정수리에 묶고 나머지는 길게 늘어뜨리는 모양을 주로 했으며, 남자는 사모관대를 연상시키는 소쿠타이를 주로 입었다
4.카마쿠라(鎌倉) 시대
헤이안 시대에 귀족들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마쿠라 막부의 재정은 어려워졌다. 이에 막부는 사치를 금하고 검소한 생활을 권장하는 방을 내렸다. 이에 따라 기모노는 호화롭고 현란한 것에서 단순 소박한 것으로 바뀌어갔다. 활동 적인 스타일로 여성은 키누바카마, 키누카즈키, 츠보쇼우조쿠를 쓴 모습이었다. 남성은 무사의 경우 히타타레, 옷깃은 타리구비, 츠유(露)라는 소매에 끝을 끈으로 장식했다.
쥬니히토에 소쿠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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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무로마치(室町)시대
지금의 기모노의 기초가 된 무로마치 시대는 네덜란드 포르투갈 사람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사라사(更紗-인물, 조수, 화목, 또는 기하학적 무늬를 날염한 베, 무명, 비단 ), 벨벳, 공단 등을 사용하게 되었다. 여성은 고소데가 겉옷이 되고 고소데바카마(小袖ばかま-하의)나 고소데유마키(小袖湯卷-속치마)를 허리에 둘렀다. 남성은 무사의 경우 히타타레가 무사의 예복이 되고 옷자락을 길게 한 나가바카마(長袴)에 집안의 문장을 넣기 시작했다.
6.모모야마(桃山) 시대
지금의 기모노 형태를 성립시킨 시대로 짧은 소매 형식의 의복이 완성되었다. 히젠노쿠니, 나고야에 조선에서 꼰 끈의 기술이 전해져 나고야 오비가 탄생했다. 여성은 고소데와 기모노와 오비, 남성은 무사의 경우 히타타레가 무사의 예복이 됐고 평복으로는 카미시모(어깨와 몸통만 있고 소매가 없는 옷으로 고소데 위에 받쳐 입었음)와 하카마를 한 빛깔로 염색했다.
7.에도(江)시대
에도시대에 들어서면 정치가 안정되면서 서민들 생활도 안정을 찾게 된다. 이에 따라 카부키나 우키요에(풍속화) 등과 같은 서민 문화가 발달한다. 기모노는 옷깃을 없애고 넉넉하게 입는 세련된 스타일이 유행하게 된다. 쇄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래 문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으며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허리에 두르는 넓은 폭의 `오비`는 무로마치 말기에서 에도시대 초기까지는 폭 5cm 정도로 허리띠에 불과하던 것이 상인 계급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에도 말기에는 40cm가 넘게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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