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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조약

저작시기 2010.03 |등록일 2010.04.02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수업 발표때 정리 리포트입니다..

목차

들어가며

1. 전통적인 조선의 외교관계 “사대교린”

2. 서계문제와 운양호 사건
1) 메이지 유신과 서계문제
2) 정한론과 운요호 사건

3. 조. 일 수호조약의 체결

4. 조약의 체결과정과 내용

5. 수신사 파견과 수호조약 부록 및 통상장정 체결
1) 수신사 파견
2) 수호조약 부록 및 통상장정의 체결

나오면서

본문내용

1. 전통적인 조선의 외교정책 “사대교린”
개항이전의 조선의 대외정책은 조공제도였다. 조선은 당시 동북아지역에서 패권국의 지위를 점하고 있었던 명과 또 명 이후에는 청과 조공관계를 맺고 안보 외교, 경제 통상외교를 추진하였다. 그리고 당시의 주변지역에 속해 있었던 일본, 유구 등에 대해서는 조선이 중심국으로서의 후덕함을 보여 주었다. 흔히 개항이전의 조선의 외교정책을 사대교린(事大交隣)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사대는 중국과의 관계를 의미하였고, 교린은 유구나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를 의미했다.
사대교린에 대한 해석에 있어 사대는 조선과 중국의 상하 관계, 교린은 조선과 일본, 유구 등과의 평등한 관계로 해석하기도 했다. 즉 조선은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작은 나라를 존중해 주는 나라를 대국으로 섬겼으며 개항이전의 조공질서 하에서의 조선과 일본의 교린 관계는 평등한 관계가 아니었고 오히려 은혜를 베푸는 관계였다. 교린의 이러한 관계는 문화, 정치, 지리 등의 측면에서 설명된다.
문화적인 면에서 조선이 일본을 본다면 오랑캐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삼강오륜을 기본윤리로 하고, 혈연관계를 중히 여겼으나, 일본은 일을 더 중히 여겼고, 동성동본 간에도 결혼이 가능했다. 신분제도의 면에서도 사농공상(士農工商)이 있어 고위 관료는 경전에 밝아야 했는데, 반면 일본은 병농공상(兵農工商)만이 있을 뿐 선비계급은 없었다. 메이지유신 이전에는 과거시험도 없었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일본은 지방 분권적이라, 조선과 가까운 대마도의 왜구들은 막부 정보보다 조선과 접촉하여 상국으로 받들었다. 또한 대마도는 산악지대라 자체 식량생산이 불가능했기에 조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과 일본의 전통적 관계는 조선이 왜구를 다스리는 관점에서 형성되었다. 조선 초기부터 왜구의 행패가 심하여 세종 임금 때에는 대마도를 점령하기도 했다. 조선은 왜구의 노략질을 막고 그들을 다스리기 위해 제한된 지역에 와서 교역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15

참고 자료

蔡中默, 『제3장 개국외교 : 조. 일 수호조약』한국정치외교사학회, 1993
최동희,『조. 일 수호조약의 외교사적 의의』강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2003
이근관, 『조일수호조규(1876)의 재평가-전통적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관점으로부터』서울국제법연구, 2004
참고 사이트 http://histori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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