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디자인여행 이집트,케냐,모로코

저작시기 2009.10 |등록일 2010.04.02 파워포인트파일MS 파워포인트 (ppt) | 58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이집트,케냐,모로코의 디자인자료 ppt입니다.

목차

- 이집트
지리적 배경
사회문화적 배경

-케냐
지리적 배경
문화적 배경

3장. 아프리카와 중동의 민속의상
-MOROCCO
지리적 배경
문 화 적 배 경

본문내용

투탕카멘
BC 14C 활동한 이집트의 왕(BC 1333~1323 재위)

-18왕조 12대 왕으로 9살에 즉위
18세에 요절

-1922년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발굴
(110kg의 황금관과 황금가면 등의 금은보화 및 3천여 년 동안 마르지 않은 향료 등 3천 500여 점의 유물 발견)

-무덤발굴에 관여한 사람들이
연이어 사망하면서 ‘미라의 저주’라는 괴이한 소문

영 생 의 비 밀
이집트인들은 ‘죽은 뒤 다시 죽지 않기 위해’ 죽음을 정복하고자 애썼다.
그래서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우고 깊은 무덤을 팠으며, 시신이 부패하는 것을 막고,
살아있을 때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게 하려고 미이라를 만들고 긴 장례식을 거행했다.


클레오파트라 7세(BC 69~30)는
이집트 프롤레마이오스 12세의 셋째딸로 태어나 18살에 남동생과 결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권력 기반인 그리스계의 외면으로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폼페이우스와 권력투쟁을 벌이다가 이집트에 온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협상하였다. 다시 파라오 자리에 복귀한 클레오파트라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물리친후 정치에 몰두하였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후에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협동하였으며 3년후 결혼하였다. 결혼후 그녀는 남편 안토니우스의 권력투쟁을 경제적으로 도운 대가로 페니키아, 유대등의 쓸모있는 영토를 할양받아 확장하였다. 권력구조의 변화로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레피두스와의 삼두정치가 깨지자 안토니우스와 함께 악티움 해전을 벌였다. 하지만 전쟁은 실패하였고 자신을 일개 이집트 여인 취급하는 옥타비아누스와 연합할 수 없음을 직감한 그녀는 자살했다. 그녀의 자살에 대해 뱀에 물려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독가스를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자살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옥타비아누스가 죽여놓고 뱀에 물려 자살했다고 발표해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려고 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클레오파트라는 지식인인 블레즈 파스칼조차도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남성들에게 성적인 관점에서 평가받았다. 그녀가 살고 있었을때에도 옥타비아누스로부터 로마를 짓밟는 이집트 여인 취급을 받기도 했다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