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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중업과 그것을 표현하려고 했던 내가 설계한 미술관

저작시기 2003.06 |등록일 2010.04.02 한글파일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자신이 좋아하는 건축가를 선택하여,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상세하게 비교 분석하는 리포트-

자신이 설계한 모형 사진과의 비교적 상세한 비교를 담고 있다-

목차

1. 한국 현대건축의 원점, 김중업(1922 ~ 1988)
2. 건축가 김중업의 건축 철학
3. 내가 생각한 미술관 설계
4. 건축적 어휘 비교

본문내용

1900년대 식민지와 6.25전쟁의 소용돌이로 인해 세계 건축의 흐름에 ‘소외’ 정도를 넘어, ‘고집’으로 일관된 우리나라의 건축적 상황에서 서구의 모더니즘을 한국 건축으로 승화시킨 최초의 건축가이며, 자기만의 독특한 건축적 경지인 서양건축의 한국화 혹은 한국건축의 현대화를 이룬, 한국 현대 건축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건축가가 바로 김중업이다.
1922년 평양에서 5남 2여중 차남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감수성이 예민하여 시와 그림에 탐닉하던 그는 그림교사의 권유로 요코하마고등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하여 파리 에꼴 데 보자르 출신의 나까무라 준뻬이교수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 후, 일본의 설계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힌 뒤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52년 베니스국제예술가 대회에 참가, 여기서 근대건축의 건축가 거장, 르 꼬르뷔제를 만나 파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면서 현대 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들이 설계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였다.
1956년 한국으로 돌아온 후 자신의 사무실을 개설하면서 자신의 창조성을 보다 확대하고 미래를 향한 거대한 세계를 펼치는 작품 활동을 하였으나 꼿꼿한 선비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성격, 비타협적인 작가의식 때문에 군사정권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해오다 1971년 11월 거의 반강제적으로 출국, 프랑스로 추방되어 해외에서 유랑생활을 하다가 1978년 11월 영구 귀국 1988년 5월 11일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서울대 교수, 홍익대 교수, 프랑스 공인건축가, 하버드 객원교수 등을 거치면서 필그림 홀 계획안(56년), 부산대학교 본관 및 서강대학교의 건물들, 주한 프랑스 대사관(59년), 부산 충혼탑(80년), 서울올림픽 기념비(85년) 등 국내외에 대략 200여개의 프로젝트와 작품을 남겼다.
조형의식이 단일하지 않고 오히려 이원적이고 대립적이라는 사실은 거장들의 작품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김중업의 작품에서도 첫째, 굵게 움직이는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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