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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와 조조

저작시기 2010.04 |등록일 2010.04.01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유비와 조조

목차

Ⅰ. 序論
Ⅱ. 유비(劉備), 그는 누구인가?
ⅰ. 유비의 약력
Ⅲ. 유비, 그 혹평의 배경과 생존을 가능케 한 조건
ⅰ. 혹평의 배경
ⅱ. 생존을 가능케 한 유비의 능력
Ⅳ. 덕장(德將), 유비.
Ⅴ. 結論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序論
흔히들 원말명초의 문인(文人)인 나관중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와 대비해서, 많은 사람들이 정사(正史) 삼국지라고 일컫는 『삼국지(三國志)』의 저자 진수 진수 [陳壽, 233~297]
중국 서진(西晉)의 역사가. 자 승조(承祚). 쓰촨성 바시[巴西] 출생. 진씨는 바시의 호족으로서, 그의 아버지와 그는 촉한(蜀漢)에서 벼슬하였다. 진(晉)나라의 학자 장화(張華)가 그의 재능을 인정하여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의 관직에까지 올랐다.
는 그의 책인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선주전(先主傳)에서 유비를 이렇게 평가했다.
선주(先主:유비)는 식견이 얿고 의지가 강했으며, 더욱이 넓은 포용력을 가지고 있어, 뛰어난 인물에게는 기꺼이 허리를 굽혔다. 그야말로 그는 한 고조의 풍모를 갖춘 영웅의 그릇이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나라의 장래와 태자를 보좌하는 일을 제갈량에게 모두 맡겼다. 거기에는 사사로운 감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고금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군신관계의 모범이었다.
한편 유비는 조조보다 권모술수가 뛰어나지 못했고, 따라서 그의 영토는 협소했다. 그러나 수많은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조조의 신하 되기를 거부했다. 그것은 조조의 도량으로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며, 타산적으로는 자신의 안전을 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Ⅳ. 덕장(德將), 유비.
앞에서 살펴본 유비의 모습에서 우리는 절대 유비가 지혜로운 장수이거나(智將), 다른 군웅들처럼 용맹스럽지는 않았다(猛將). 하지만 그는 덕(德)으로서 주변사람들을 다독이고 자신의 뜻을 위해 그것을 사용할 줄 알았다. 그렇다면 유비가 지니고 있던 ‘덕(德)’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크게 4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유비는 매우 겸손한 인물이었다. 가장 좋은 예로, 이름도 없는 젊은이였던 공명을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예로서 군사로 맞아들인 인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유비가 공명뿐만 아니라 뛰어난 인재에게는 한결같이 겸손한 자세로 대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유비가 촉을 치면서 부수관을 점거했다.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유비가 방통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 연희만큼 유쾌한 적은 없구려.”
그러자 방통은 이렇게 대답했다.
“남의 나라를 토벌하는 것이 어찌 기쁜 일일 수 있겠습니까? 인자한 사람의 군대라고는 말할 수 없지요.”
아픈 곳을 찔린 유비는 방통에게 화를 내며 자리에서 사라지라고 말했다. 방통은 묵묵히 그 자리를 떴다. 그러나 유비는 곧바로 후회하여 방통을 불러들였다. 다시 자리에 앉은 방통은

참고 자료

陳壽 著, 김원중 譯,『正史 三國志』中 魏書, 신원문화사, 1994.
陳壽 著, 김원중 譯,『正史 三國志』中 蜀書, 신원문화사, 1994.
타츠마 요시스케, 모리야 히로시 공저, 이재정 譯, 『영웅의 역사 4-삼국지의 영웅』, 솔 출판사, 2000.
토모노 로이토 케이이치 공저, 이재정 譯, 『영웅의 역사 5-난세 영웅』, 솔 출판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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