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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

저작시기 2010.04 |등록일 2010.04.01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당태종

목차

Ⅰ. 序論

Ⅱ. 本論
Ⅰ.당의 건국과 당 정권의 성격
2. 현무문의 변
3. 정관의 치
4. 뛰어난 인재등용
5.당 태종에 대한 비판

Ⅲ. 結論

參考文獻

본문내용

Ⅰ. 序論
정관지치를 이룩한 사람은 이세민 본인과 그 밑에서 정책을 결정한 군신들이다. 태종 자신은 그 중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상황이 발전하자 이를 촉진하고 양성하는 기능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세민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역사에서는 이세민을 태종 황제라 부른다. 하지만 그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에는 이세민과 태종 사이에 등호가 성립 될 수 없었다. 이연의 둘째 아들인 이세민은 진왕으로 봉해져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왕조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에는 종종 생사존망의 권력 투쟁이 일어나기 십상이고 이런 투쟁에 뛰어든 사람은 권력의 정점에 오르거나 반대로 한을 품고 생명의 끝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그의 역사였다. 정관지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역사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럼 이제 당제국 건국 초기의 태종의 대하여 고찰해보도록 하겠다.

Ⅱ. 本論
Ⅰ.당의 건국과 당 정권의 성격
당(唐)을 건국한 고조(高祖) 이연(李淵)은 관롱집단(關隴集團)으로 알려진 새로운 세력이다. 그의 조부 이호(李虎)는 서위(西魏) 8주국(柱國)의 한 사람이고 서위의 개국공신으로 당국공(唐國公)에 책봉된 인물이다. 이연은 수 양제와는 이종 형제로 양제의 신임을 얻어 개원유수(太原留守)로 임명되었고(617), 돌궐을 방어하고 농민반란을 진압하고 있었다. 그러나 농민의 반란이 각지로 확산되자 이연은 수의 붕괴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 그의 아들 세민과 더불어 수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이 군사를 일으킨 곳은 북제(北齊)의 군사적 중심지인 진양(晋陽)이었고, 그의 기반세력을 마련한 곳은 관중(關中)의 장안(長安)이었다. 이는 북제의 군사적 기반과 북주․수의 정치적 터전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당의 건국은 이와 같은 지정학적(地政學的)조건을 기반으로 하여 창업에 성공한 것이다. 처음 이연의 군사력은 3만이었으나 관중에 진입하였을 때는 10여만으로 증가하여 장안을 함락할 수 있었다. 그는 양제의 손자를 황제로 추대한 후 강남에 내려가 있던 수 양제를 태상황(太上皇)으로 추존하였다.

참고 자료

진순신 지음, 권순만외 옮김 《중국의 역사 6 장안으로 가는 길》1995 한길사
양판 지음, 김태성 옮김《정관정요에서 배우는 난세를 이기는 지혜》2002 예담
웨난, 상청융 지음 유소영, 심규호 옮김 《법분사의 비밀》2000 일빛
신영란 《당태종이 묻어버린 연개소문의 진실》2006 작은 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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