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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병합의 과정연구

저작시기 2009.12 |등록일 2010.03.30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한국 병합의 과정연구에 대해 논문과 책등을 참고해 쓴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서론

2. 구조약의 인식
⑴ 구조약과 유무효론과 제국인식
⑵관습 국제법 논의와 역사 인식
⑶제 2차 일한 협약의 강제성 문제
⑷청일 전쟁 전 정상적인 한일간 협정들

3. 한일의 국제법 수용의 비교
⑴형식적인 하자의 논리 - 조약 명칭과 비준의 문제
⑵제 2차 한일 협약의 비준문제
⑶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의 체결
⑷제 3국에 의한 승인의 효과

4. 한국 병합의 역사 인식
⑴운노 후쿠쥬의 한국 병합의 역사 인식
⑵한국 병합 조약의 불성립에 대한 순종황제의 증언
⑶제 2차 일한협약의 형식상 문제점
⑷아라이 신이치
⑸유효론 근거

5.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1995년 한국 국회에서는 을사조약과 한국 병합 조약의 원천적 무효가 제기되는 결의가 채택되었다. 구조약의 문제 한국 식민지 지배의 합법, 불법의 문제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1991년에 조일 구교 저앙화 교섭 1회 회당 때 북한은 구조약은 무효이고 병합은 불성립이며 따라서 식민지가 아니었고 부당한 군사점령이었음을 주장한다. 군사 점령이면 대한 제국에 주권이 남아있고 일본의 주권행사는 권한이 없다. 이태진 교수는 고종황제가 스스로 무효화 운동을 벌여 수호조약을 체결했던 9개국 원수들에게 보낸 친서에서 한국 정부 대신의 조인과 정부의 회의는 강박, 납치, 강제에 의한 것이고, 고종이 정부의 조인을 허락하지 않으며 이 늑약은 공법에 위반되어 저절로 무효가 된다고 밝혔다. 사카모토 교수는 어새가 등록 되지 않는 인장으로 날인이 되었기 때문에 구조약의 무효화를 주장한다. 을사조약 체결 당시에는 관습 국제법이 있었고 국가 대표자에 대한 강제는 조약의 무효 원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강제의 구별 문제인데 일본은 국가 대표자에게 권총 협박 등을 필요로 하지 않는 형태로 교모하게 대한제국을 압력 했다고 생각된다고 한다. 하지만 또 당시 국제법은 국가 자체에 대한 강제라는 것이 국가는 전체 인격이므로 국가 기관에 협박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국가 대표자 개인의 협박과 기관의 협박 등 구별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 강제를 구별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것은 한국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프랑시스 레이 등 다른 나라의 교수들은 조약이 무효임을 주장했는데 이를 봤을 때 국가 대표에 대한 강제는 인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직무상 기관과 국가 대표자는 개인과의 구별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배근 교수는 관습 국제법이 명확히 문서에 있는게 아니라 국제 관계 당사들의 의식 세계에서 규범으로써 존재하는 것으로 관습 국제법 규범이 국제 관계를 규율할 수 있는 영역은 협소할 수밖에 없었고 그 표현이 국가 대표에의 강제만이 조약 무효화의 원인으로 규범화 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1906년에 고종은 친서를 보내면서 을사조약이 무효이므로 공사를 다시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을사조약을 공법에 위배되어 저절로 무효화가 된다고 밝혔다. 당시 관료들의 만국 공법이라는 국제법이 국제관계를 규율하고 있고 그 규범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2. 구조약의 인식
⑴ 구조약과 유무효론과 제국인식
박배근 교수는 제국주의를 강하게 추궁하려고 하고 있고 운노 후쿠쥬는 제국주의 판의 객관적 저의에 기대어 일본의 제국주의 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을 유보하려고 하고 있다.
조약 무효화의 관습 국제법은 강제력이 없는 규범이어서 제국주의 행태를 현실에서 막아낼 수는 없지만 규범으로서 제국주의 행태를 규제하는 측면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참고 자료

한국병합의 불법성 연구 / 이태진 / 서울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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