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필봉농악(필봉풍물굿)의 유래, 필봉농악(필봉풍물굿)의 구성과 필봉농악(필봉풍물굿)의 역할 및 필봉농악(필봉풍물굿)의 가락보 그리고 필봉농악(필봉풍물굿)의 전수 심층 분석(필봉농악, 필봉풍물굿)

저작시기 2010.03 |등록일 2010.03.29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필봉농악(필봉풍물굿)의 유래, 필봉농악(필봉풍물굿)의 구성과 필봉농악(필봉풍물굿)의 역할 및 필봉농악(필봉풍물굿)의 가락보 그리고 필봉농악(필봉풍물굿)의 전수 심층 분석

목차

Ⅰ. 필봉농악(필봉풍물굿)의 유래

Ⅱ. 필봉농악(필봉풍물굿)의 구성과 역할
1. 꽹과리의 역할
2. 징의 역할
3. 장고의 역할
4. 북의 역할
5. 소고의 역할
6. 잡색의 역할

Ⅲ. 필봉농악(필봉풍물굿)의 가락보
1. 호허굿
2. 풍류굿

Ⅳ. 필봉농악(필봉풍물굿)의 전수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필봉농악(필봉풍물굿)의 유래
필봉마을은 전라도의 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동쪽으로는 진안군고 장수군이, 남쪽으로는 남원군과 순창군이, 서쪽으로는 정읍군이, 북쪽으로는 전주시를 끼고 있는 완주군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군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30km 가량 떨어진 곳에 면소재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다시 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3km 가량 떨어진 곳에 마을이 있다. 마을 서쪽으로 붓끝이 모아지듯 산자락이 정상을 향해 반듯하게 모인 산의 이름이 필봉(筆峯)산이다. 결국 마을 이름도 산의 이름을 본 떠서 필봉리가 되었는데 마을을 필봉산이 감싸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모두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마을의 산세가 험하기 때문에 농토의 규모가 작고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주를 이루는 농업형태를 취한다. 필봉마을에서는 정초에 치는 ‘마당 밟기’, 섣달 그믐밤에 치는 ‘매굿’, 정월 아흐레에 치는 ‘당산제’, 보름날에 치는 ‘찰밥걷기 풍물’, 보름날 징검다리에서 치는 ‘노디고사굿’, 다른 마을로 걸궁할 때 치는 ‘걸궁굿(걸립굿)’, 여름철 김매기 때의 ‘두레굿’, 풍물을 치기 전에 치는 ‘기굿’, 큰 마당이나 저녁 내내 치는 ‘판굿’ 등이 있으며 본디 마을 단위의 마당 밟기, 당산굿 등 풍물이 아주 옛날부터 전승되어 왔으나 판굿과 외지의 걸궁굿 같은 수준 높은 풍물굿의 모습을 갖춘 것은 115년 전 유명한 상쇠 박학삼을 초청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박학삼은 강진면 출생으로 ‘걸궁굿’과 ‘마을굿’의 유명한 상쇠였다. 박학삼은 이화춘에게 , 이화춘은 남원에 사는 전판이에게 풍물굿을 배웠다고 한다. 박학삼은 필봉리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풍물굿을 가르쳤다. 14세때부터 박학삼 밑에서 풍물굿을 배우며 끝쇠를 치던 양순용이 18세부터 상쇠를 이어받았다. 양순용은 필봉의 풍물굿이 지금과 같이 짜임새 있는 규모와 형태를 갖추고 활동을 하게 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였다. 양순용은 1955년 지병으로 타게 하자 그의 장남인 양진성이 필봉농악의 상쇠를 이어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양순용의 활동시절에 필봉마을이 풍물굿의 체계와 기예를 갖추게 되자 ‘필봉농악단’ 이라는 이름으로 대외적 활동을 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김헌선 - 김헌선의 사물 놀이 이야기, 풀빛
김원호 - 풍물굿 연구, 학민사, 1999
민족학회 - 한국민속학의 이해, 문학 아카데미, 1994
유무열 - 농악 민족문화추진회, 1986
필봉굿 홈페이지 - (www.pilbong.net)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