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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답사

저작시기 2009.09 |등록일 2010.03.29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경복궁 답사 기행문

목차

없음

본문내용

매우 흐린 날씨. 잠시 후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벼르고 벼려왔던 경복궁 답사 날. 날이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한손에는 우산을 받쳐 들고 다른 한손에는 카메라를 들쳐 메고는 경복궁을 향해 나섰다.
지하철에서 경복궁으로 통하는 길은 옛 정취를 살리기 위함인지 화강암으로 반듯하게 길이 깔려 있었다. 늙지 않는 문이라 이름 지어진 불로문을 기대 반 장난 반으로 지나오며 밖으로 나왔을 때 한 무리의 익숙한 얼굴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림 1. 북궐도

경복궁 답사에 앞서 확인한 것은 북궐도로 비록 실물은 아니었으나 당시 궁궐의 규모와 느낌을 전달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경복궁은 서울의 북쪽에 위치하였다 하여 북궐이라 칭해져 왔는데, 이 북궐도는 조선 고종 후기에 궁궐의 규모와 전각의 배치를 그린 평면도형을 축소하여 모사한 것으로 여러 그림이 전해져 온다.
당시의 궁궐은 무려 330여 동의 대소 전각과 부속 건물을 갖춘 화려하고 장엄한 것이었
다. 그러나 1910년 이후 일본인에 의하여 거의 철거 되었으며 지금은 일부 건물과 담장만이 남아 있다.
당시 한양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는 수선전도를 보면 숭례문으로부터 일직선으로 길게 나타난 대로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길은 현재의 광화문 광장이 된 육조거리로 광화문-흥례문-근정문의 일직선상 배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근정전에서 바라보았을 때 한양의 모습을 한눈에 살피기 위함이다.

경복궁은 태조 4년에 창건된 조선의 정궁이다. 태조 이성계는 1392년 7월 7일 송도 (현재의 개성)의 고려 왕궁인 수창궁에서 즉위하여 조선을 건국한 다음 천도할 것을 결심하고 이듬해에 계룡산 신도안에 도읍을 정하려고 궁궐과 도성의 축조에 착수하였다가 중지하였다. 태조는 즉위 3년에 한양 도읍을 결정하여 10월에 천도하고 다음해에 경복궁을 건설하였다. 그로부터 이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으로 사용 되었다.
이 궁은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의 병화로 전소되는 비운을 맞았으며 그 후 왕궁으로서 불길하다는 이유로 273년간이나 중건되지 못하였다. 고종 2년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이 중건에 착수하여 고종 5년에 창건 당시의 규모로 복원하고 같은해 7월에 고종이 창덕궁으로부터 이곳으로 왕궁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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