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덕수궁 답사 공간분석

저작시기 2010.03 |등록일 2010.03.27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처음 덕수궁에 들어서게 되면 대한문이 웅장하게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1904년 경운궁의 화재 후 복원 공사 때 동쪽 문인 대한문을 정문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며, 1906년에 다시 대한문으로 개칭되어 사용 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정문은 인화문으로 중화문 앞쪽에 위치해 있었고 폐쇄되었다가 후에 건극문이라는 문을 세우기도 했었다. 대한문은 동향을 하고 있는 덕수궁의 정문으로 지금의 문은 도시계획에 의한 도로확장에 따라 뒤로 밀려 현재의 자리에 있게 되었고, 그나마 아스팔트 도로 포장으로 인해 문의 기단이 아스팔트 밑으로 묻혀 엉성한 모습으로 서 있다. 보통 궁의 정문은 중층으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곳은 단층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중화전이 단층인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목차

Ⅰ. 덕수궁 현황
Ⅱ. 대한문과 길
Ⅲ. 대화문부터 중화전까지의 공간
Ⅳ. 석어당의 의미
Ⅴ. 준명당과 즉조당의 연결
Ⅵ. 현대적 공간의 결합
Ⅶ. 궁궐안의 카페
Ⅷ. 궁궐안의 서양식 건물과 공간
Ⅸ. 덕수궁의 돌담길과 결론

본문내용

Ⅰ. 덕수궁 현황

▶지정현황 : 사적제124호 덕수궁일원(1962.7.25 지정, 2007.2.7 추가지정)
▶대지면적 : 63,069.2㎡(18,514.6평)
▶고 건 물 : 중화전, 석조전 등 22동
- 국보 : 1건(보루각, 자격루) - 보물 : 3건(중화문 및 중화전, 함녕전, 흥천사종)



원래 덕수궁은 왕궁이 아닌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탔으나 1593년 10월 의주의 피난길에서 환도한 선조가 머물렀었고, 1608년 선조에 이어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광해군은 1년부터 이 궁을 덕수궁의 옛 이름인 ‘경운궁’으로 불렀으며 1615년 자신과는 당파가 다른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를 이곳에 유페 시킨 후 왕궁을 창덕궁으로 옮기었다. 그리고 1618년 인목대비 존호를 폐지하고 경운궁을 ‘서궁’ 이라 낮추어 부르기 시작했다.
1623년 인조반정에 의해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는 ‘경운궁’으로 이름을 다시 바꾼 후 즉조당에서 즉위식을 올리고 1674년 창덕궁으로 왕궁을 옮길 때까지 이 궁궐에서 머물렀다. 그 후 고종에 의해 정식 궁궐로 사용되기까지 270여 년간 왕가의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1897년 고종이 러시아 공관에서 환궁하면서 이곳은 다시 왕궁으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하는데,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고치고 연호를 광무하 정하였다. 치욕스러운 역사의 한 장인 한일 의정서와 을사 보호 조약을 체결한 것도 바로 이 궁에서 있었던 일이다. 1907년 8월 고종에 이어 즉위한 순종은 그해 11월 왕궁을 창덕궁으로 옮겨졌으나 고종은 1919년 1월 31일 함녕전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한 많은 일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덕수궁’이라는 현재의 이름은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간 후 고종의 만수무강을 비는 뜻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며, 정식 궁궐의 명칭은 아니다. 원래의 이름인 ‘경운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