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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두 번의 노조 파업

저작시기 2010.03 |등록일 2010.03.24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국 언론사 - mbc 두번의 노조 파업 그의미에 대해서

목차

1. 서 론

의의 - 왜 MBC 인가?


2. 본 론

88년과 92년의 파업
현재의 파업

3. 결 론

88-92년때의 파업과 현재의 파업 비교

본문내용

1. 서론

왜 MBC인가?

MBC는 삼성비자금사건, 황우석사건, 미국산수입쇠고기 보도 등의 사회적 이슈를 크게 보도한 언론이다. 또한, 한국일보와 동아일보 노조 결성 이후 최초로 결성된 방송사 노조이다. 이것은 KBS와 다른 방송사들의 노조가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언론 통폐합 당시 외부 인사의 유입 없이 입장을 관철해 온 독자적인 노선이기도 하다. 이런 MBC 특수성과 최근의 상황 때문에 많은 언론사들 중 , MBC 노조를 택하였으며, 총 6번의 파업 중에 가장 이슈가 되었던 88년 최초의 파업과 92년의 최장기 파업, 그리고 현재 이슈인 미디어법 관련 파업 내용을 다루기로 하였다.

2. 본론
1). 88년대 파업

1987년 6월 항쟁 이후의 변화

명동성당사건 - 1987년 6월 항쟁의 현장을 취재코자 명동성당에 취재를 나간 MBC보도진을 보고 흥분한 민중들이 보도차량을 점거, 운전기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군사정권의 대변인 역할을 하였던 언론사에 대한 민중의 불신과 분노가 폭발.) 하지만 MBC보도국에서는 당시 취재기자들에게 ‘평온을 되찾은 명동’이라는 민주화열기를 반감시키기 위한 여론조작용 거짓뉴스를 제작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반발한 MBC기자들은 취재를 거부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6.29선언을 발표하고(취지문의 내용 - 허울뿐인 공영방송제 철폐, 황선필사장을 비롯한 관선 경영진 즉각 퇴진, 기관원 사내 출입 전면 금지, 1980년대 해직기자 전원 복직 등 4개항을 제시), 이후 7월 16일 기자들 뿐만이 아닌 MBC의 보도,제작,기술부문 모든 국과 실을 망라한 ‘방송민주화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하지만 회사측의 와해공작에 의해 9월 중순 당시 방민추공동대표였던 유우근 기자가 자진퇴사하면서, MBC방민추는 사실상 해체됐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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