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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

저작시기 2010.03 | 등록일 2010.03.23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수업발표때 사용했구요..논문과 문헌을 참고해 만들었습니다..!!

목차

1. 갑신정변의 배경 및 원인
1) 개화당과 사대당의 반목
2) 반청 감정
2. 일본과의 정변모의
3. 갑신정변의 경과
4. 갑신정변의 실패원인
1) 다케조에 공사의 무책임한 대응
2) 청군에 대한 출병의 명분 제공
3) 청군에 대한 병력평가의 문제점
5. 갑신정변의 결과

본문내용

1. 갑신정변의 배경 및 원인
1) 개화당과 사대당의 반목
1882년의 임오군란을 계기로 이를 진압한 청국은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을 강화하여 민씨 정권을 회복시켰다. 이리하여 민씨 정권은 종래의 개화 책에 따른 일본식의 개혁을 버리고 청국에 의존하는 정부가 되었다. 한편 일본은 임오군란으로 조선에 있어서의 정치적 기반을 잃고, 방향을 바꾸어 경제적으로 적극적인 진출을 꾀하게 되었다. 여기에 한국 민중의 생활은 더욱 곤궁해지고 이에 따라 날로 반일열(反日熱)이 높아져 갔다. 민씨 정부는 이를 이용하여 반일정책을 강화하고 청국에 의존함으로써 정권의 유지를 꾀하게 된 것이다.
조선정부의 관료들 또한 이를 반영하여 청에 대응하는 외교정책을 놓고 두 갈래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다. 일찍이 대원군의 보수정책에 반대한 민씨 일파는 이제 청국에 의존하는 수구세력이 되었는데, 왕실 및 민씨 세력의 대표적 인물인 민영익, 민승호 등과 정계의 요인이었던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등이 이에 속하였다. 이 일파를 사대당이라고도 하였다. 이에 대하여 청국의 지나친 내정간섭과 민씨 정권의 사대경향에 반대 일본세력을 이용하여 급진적으로 근대적인 개혁을 단행하려는 인물들을 개화당이라 하였다. 그 대표적 인물은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에 파견되어 시찰하고 온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이었다.
이들은 또한 1882년의 임오군란으로 맺어진 제물포 조약에 의하여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는데 이때 일본의 하나부사(花房)공사와 함께 일본에 건너갔었다. 그들은 일본의 근대문명을 접한 후 일본의 후원으로 조선의 정치개혁을 단행하려고 결심하게 되었다.
이들 명문의 귀족 출신인 개화파의 인물들은 청의 세력을 조선에서 몰아내기 위해서는 청과 대립하고 있는 일본과 손잡고, 우선 민씨 정권을 타도하고 혁신정부를 세워 정치적 개혁을 단행할 계획을 수립했다. 반면, 민씨 정권은 김옥균 등의 활동을 견제하였다. 임오군란 이후 청을 등에 업고 집권한 민씨 정권은 일본을 모델로 삼아 개혁을 추진하려는 김옥균 등을 달갑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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保坂祐二,『복택유길과 갑신정변』(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1995
박은숙,『갑신정변의 사회적 성격』(내일을 여는 역사 제16호), 2004
구선희,『조선을 근대 식민지로 만들려 했던 중국인, 위안스카이』역사비평 2009년 봄호, 역사비평사, 2009
한우근,『개정판 한국통사』을유문화사, 1994
박은식,『한국통사』범우사, 1999
김태웅,『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6[근대]』솔, 2003
한영우,『다시 찾는 우리역사』경세원, 2004
김당택,『한국 대외교류의 역사』일조각, 2009 * 용어-두산백과사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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