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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원한 제국에 드러난 남인과 노론의 대립

저작시기 2009.11 |등록일 2010.03.01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소설 <영원한 제국>을 읽고, 남인과 노론에 대해서 쓴 레포트입니다.

A+받은 과목이니 참고하세요.

목차

Ⅰ.머리말

Ⅱ.소설 이해의 배경
1.소설의 줄거리
2.사림정치
3.붕당정치
4.영․정조의 개혁정치

Ⅲ.남인과 노론의 사상적 대립
1.사단칠정론
2.문묘종사운동
3.예송논쟁
4.성학론과 성왕론
5.노론과 소론
6.시파와 벽파

Ⅳ.맺음말

본문내용

3.예송논쟁(禮訟論爭)
예송논쟁은 조선 현종 때 궁중의례의 적용문제, 특히 복상(服喪)기간을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 크게 논란이 벌어진 두 차례의 논쟁이다. 당시 남․서인을 막론하고 예학을 중시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학풍에 따라 그 경향을 달리하였다. 남인측의 학문적 근거는 六經에 있었던 만큼 그 예론의 뒷밭침은 당연히 古禮의 근원인 「儀禮」였다. 허목이 지은 禮書인 「經禮類纂」은 철저히 古禮에 근원을 두었다. 반명, 김장생에서 비롯된 서인측의 예학은 「朱子家禮」에 기본을 두고 있다. 그의 저서인 「家禮輯覽」 자체가 바로 「朱子家禮」를 근간으로 하여 그것을 보완하는 작업으로서, 그의 예학은 주자의 예학을 충실히 계승하였다.
인조반정 이후의 서인 정권에서는, 김장생이 그들의 산림으로서 정신적인 지주의 위치에 있었으므로, 자연히 그의 예학 禮學時代의 초석의 자리를 차지하고서 그 권위를 인정 받았다. 그의 아들이자 수제자인 김집에 전승되어 연구․정리된 예학이 17세기 예학 중시기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김집을 통해서 학통이 송시열에게 전승되어 계속 집권세력의 이론적 기반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해 갔다.
六經에 바탕을 둔 남인측의 예학은 집권세력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그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서인들에 의해서 결정된 복제에 대해서 남인들은 그 오류를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로서는 남․서인을 막론하고 예를 치세의 근본으로 생각하여 매우 중시하였다. 그래서 자기 학파의 정통성을 確保하기 위해서 自派의 학문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이론적 투쟁을 전개해 나갔던 것이다.

참고 자료

이인화 <영원한 제국>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 권1,2
이덕일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3: 당쟁과 정변의 소용돌이>
허권수 <조선후기 남인과 서인의 학문적 대립>
동아시아 학술원, 고전번역원 <정조어찰첩>

박광용 「역사학자가 본 역사소설 소설 영원한 제국」역사비평 1993년 겨울호(통권 25호)
박현모 「정조의 탕평 정치 연구: 성왕론의 이념과 한계」한국정치학회보 [2000년]
지두환 「조선후기 예송논쟁의 성격과 의미」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94]
조성산 「18세기 호락논쟁과 노론 사상계의 분화」한국사상사학, 8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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