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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국문학과 예술향유계층의 확대

저작시기 2010.01 |등록일 2010.02.23 한글파일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1. 머리말
2. 조선후기; 국문학과 예술향유계층의 확대
3.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조선후기의 시가 연구는 시가가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된 1930년대 이래 지속되었다. 이 시기 시가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변화를 향한 노력이 다각도로 시도되었던 대상 시기의 특수함 때문이다. 이 시기는 조선 문화예술의 근간을 이루었던 예교적(禮敎的) 예술관이 균열되고, 민간 예술의 역량이 커지면서 시가의 변화를 추동하였다. 하지만 조선 후기는 근대성, 담당층, 통속성 등의 문제로 여전히 연구자의 관심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국문학과 예술향유계층의 범위를 중심으로 조선전기와 비교하여 조선후기의 두드러지는 그 특색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조선후기; 국문학과 예술향유계층의 확대
조선후기는 양난(兩難) 이후 싹트기 시작한 변화의 기운이 사회문화 각 영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일어난 변화의 시대로 알려져 있다. 시가를 본격적인 연구대상으로 자리매김한 조선시가사강에서는 조선후기 시가사를 `시가선집시대(詩歌選集時代)`, `창곡왕성시대(唱曲旺盛時代)`로 명하기도 했다. 양난 이후 이루어진 생업의 변화는 도시의 성장과 이에 기반을 둔 시정문화의 성숙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예악사상에 기반을 둔 예술관의 균열을 초래하기 시작했다.
조선후기는 중세문학을 지키려고 하는 노력과 근대문학을 이루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극의 관계를 가지고 서로 얽혀 있어, 그 시기를 중세문학의 연장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고 근대문학의 시발이라고 해도 무리가 있다. 정통 한문학에 대해 비판과 반성의 소리가 제기되었으며, 이에 맞서 이명한(李明漢), 정두경(鄭斗卿)등은 복고노선의 확대를 주장하였다.
세종 시절, 훈민(訓民)을 통한 성리학적 질서의 확대를 위해 만들어졌던 한글(國文)의 보급은 국문학의 발달을 초래했다.

참고 자료

조동일,『한국문학통사 2』, 지식산업사, 2005
조동일,『한국문학통사 3』, 지식산업사, 2005
박애경,『조선후기ㆍ개화기 시가 연구의 현황과 과제』, 동방학지, 2009
박현순,『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여성문학 인식』, 한국사상과 문화,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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