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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 궁예, 왕건의 후삼국

저작시기 2009.10 |등록일 2010.02.16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2,800원

소개글

후삼국시대의 영웅인 궁예, 왕건, 견훤이 활액한 고려 성립전 시대상황과 인물상을 역동적으로 그려낸 소논문 형식의 레포트입니다. 참고문헌을 정확히 제시하고 관점이 참신한 면이 있어 교수님께 칭찬받은 레포트로, A+받은 과목입니다.

목차

[출생]
1. 궁예
2. 왕건
3. 견훤
[외모]
1. 궁예
2. 왕건
3. 견훤
[성장과정]
1. 궁예
2. 왕건
3. 견훤
[즉위과정]
[정치적 특성 및 정책]
[최후: 성공과 몰락]

본문내용

서기 765년, 신라 제36대 왕인 혜공왕(惠恭王)이 8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이와 함께 천년 신라의 존재도 흔들리게 된다. 왕위를 향한 귀족들 간의 무력투쟁과 공정치 못한 정권교체가 남발하게 되고, 귀족들의 사치는 극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백성들을 향한 가혹한 착취로 인해 민심은 점점 흉흉해져만 갔다.
이에 불만을 품은 지방 호족들과 백성들은 자체적인 세력을 형성해 나갔다. 그 중 대표적 인물이 바로 궁예(弓裔), 견훤(甄萱), 그리고 왕건(王建)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적절히 활용했고,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해 혼란에 빠져있는 백성들을 끌어 모아 후삼국 시대를 열어 간다. 흔히들 그 세 사람을 선인, 악인, 추인이라고 한다. 선인은 왕건을, 악인은 견훤을, 추인은 궁예를 가리킨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다. 실례로 미국 캔자스 대학 전직 교수 허스트 3세는 ‘선인? 악인? 추인’이라는 논문을 쓰면서 “선인, 악인, 추인, 이들은 사료 속에서 심하게 왜곡돼 있으며,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역사서에 기록된 것처럼 성스럽거나 악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들 모두는 사전에 결정된 역사의 대본 속에 꼭 필요한 배우들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후삼국시대의 걸출했던 세 영웅, 궁예, 견훤, 왕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최후: 성공과 몰락]
1. 궁예
918년 6월,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이 왕건을 왕으로 추대했다. 이들 4명은 궁예의 친위군 장수들이었기 때문에, 기습적 모반으로 비교적 손쉽게 궁예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궁예는 변장을 하고 산으로 도망을 갔으나 결국 부양(강원도 평강) 산길에서 농민들에게 잡혀 살해당했다. 891년 큰 뜻을 품고 봉기한지 28년만의 멸망이었다.
궁예의 몰락에 대해 「자치통감」에서는 “궁예의 성품이 잔인하여 해군통수(海軍統帥) 왕건이 그를 살해하고 자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이유는 호족들과의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궁예는 자신의 세력이 한반도 중부이남 지역으로 확대되어 가자, 고구려 부흥만 가지고는 백제와 신라계 주민들을 포용할 수 없다는 현실적 인식을 하게 되었다. 그는 고구려를 뛰어넘는 웅장한 국가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마진과 태봉의 국호가 나오게 된

참고 자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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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인물한국사 이야기3」, 문예마당, 1999
박선식, 「선인들의 난국 이겨내기」, 풀빛미디어, 1998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들녘, 1996
사회과학원고전연구실, 「북역고려사」, 신서원, 1997
손영목, 「고려왕조야록」, 오늘, 1997
여호규 외,「역사의 길목에 선 31인의 선택」, 푸른역사, 1999
이도학, 「궁예 진훤 왕건과 열정의 시대」, 김영사, 2000
이도학, 「진훤이라 불러다오」, 푸른역사, 1998
이재범, 「슬픈 궁예」, 푸른역사, 2000
정영애, 「단숨에 읽는 고려왕조」, 넥서스, 1997
최범서, 「이야기 고려왕조사」, 청아출판사, 1996
한국역사연구회,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2」, 청년사, 1995
한국인물대계편찬위원회, 「한국인물대계 고대의 인물」, 박우사,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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