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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판과 다식판 문양의 종류와 의미

저작시기 2009.05 |등록일 2010.02.12 한글파일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1,300원

소개글

떡판과 다식판 문양의 종류와 의미를 사진을 첨부하여 설명함.

떡판의 종류와 의미
다식판의 종류와 의미

사진 첨부함

목차

1. 떡의 유래
2. 절편의 ‘떡살 무늬’의 의미
3. 다식판 문양의 종류와 의미

본문내용

1. 떡의 유래

세계에서 우리민족 만큼 떡에 대한 애착과 종류가 많은 민족도 드물 것이다.
떡의 유래는 단군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떡의 어원은 바로 덕德에서 나왔다. 덕이란 어진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이 덕은 단군시대에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의 기본으로 자리 잡은 덕치德治에서 비롯되었으며, 이것이 단군시대의 종교인 덕교德敎를 탄생하게 한 것이다.
덕치나 덕교는 바로 단군왕검의 크고 넓은 덕을 의미하는 것으로, 덕은 단군왕검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나아라고 하는 말은 바로 단군왕검 같은 아들을 나아라는 의미이다.
우리민족은 매달 때가되면 떡을 하여 혼자먹지 않고 반드시 이웃들과 나눠 먹었다. 이렇게 나눠먹는 것이 바로 덕을 베푸는 것으로 덕교의 실천인 것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삼국이 성립되기 이전인 부족국가 시대부터 떡을 만들어 먹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시대에 떡을 주재료가 되는 곡물이 생산되고 있었고, 떡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갈판과 갈돌, 시루가 당시의 유물로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황해도 봉산 지탑리의 신석기 유적지에서는 곡물의 껍질을 벗기고 가루로 만드는 데 쓰이는 갈돌이, 경기도 북변리와 동창리의 무문토기시대 유적지에서는 갈돌 이전 단계인 돌확이 발견된 바 있다. 그리고 나진 초도 조개더미에서는 양쪽에 손잡이가 달리고 바닥에 구멍이 여러 개 난 시루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우리 민족은 일찌감치 삼국시대 이전부터 곡물을 가루로 만들어 시루에 찐 음식을 만들어 먹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여기에서 곡물을 가루로 만들어 시루에 찐 음식이라면 `시루떡`을 의미하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 민족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루떡 및 시루에 찐 떡을 쳐서 만드는 인절미, 절편 등 도병류를 즐겼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시에는 쌀의 생산량이 그다지 많지 않아 조, 수수, 콩 보리 같은 여러 가지 잡곡류가 다양하게 이용되었을 듯싶다.
상고시대의 우리음식은 일본에도 그대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정창원문서"에는 떡 만드는 방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떡의 모양새를 짐작하게 한다. `대두병은 떡 한 장에 쌀 두 홉, 콩 한 홉을 두고, 소두병은 쌀 두 홉으로 떡 한장을 하고 장마다 팥 두 홉씩을 섞는다.`라고 하여 콩시루떡과 팥시루떡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이리모치히(기름에 지지는 떡)`라는 전병에 관한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우리 민족은 시루떡, 치는 떡, 지지는 떡 해서 다양한 떡을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떡은 무천, 영고, 동맹과 같은 제천의식에 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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