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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예인 집단으로서의 남사당패

저작시기 2009.06 |등록일 2010.02.07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남사당패 관련한 리포트에요.
A+ 받았습니다.! 이거 하나면 진짜로 준비 끝이에요~

목차

1. 들어가며
2. 남사당패의 기원논쟁과 선행연구
3. 남사당패의 연행종목
4. 나가며

본문내용

“놀이란 문화 그 자체가 있기 전부터 일정한 크기로 성장한 것이다. 놀이란 태초부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기에 이르기까지 항상 문화현상 속에 함께 있었고, 그 속에 충만해 왔음을 문화 속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고 했다. 놀이란 자유스러운 것이고 막간 사이에 흘러나오는 곡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에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놀이는 어느 특정인만이 갖는 소유물이 아니며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놀이란 장소와 지속성에 의해 일상적인 삶과는 구별된다. 이것이 바로 놀이의 적극성이며, 놀이는 제한된 시간과 장소 속에서만 놀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의 고유한 과정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유랑예인의 남사당패의 삶에도 바로 이러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호이징하, 『호모루덴스』


1. 남사당패의 기원논쟁과 선행연구

남사당에 관한 옛 기록은 많지 않다. 문헌에 의하면 『해동역사』에 신라 때 인형놀음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사』, 『폐행전』, 『전영보전』, 『지봉유설』, 『문헌통고』, 『허백당시집』 등에 괴뢰목우희(傀儡木偶戱)나 그것을 가지고 놀았을 광대에 대한 기록이 있긴 하지만, 이것이 서민들을 위한 놀이이고 천한 계급 가운데 하나인 광대들과 관련한 것이다 보니 양반계급 중심의 역사기록에 상세히 기록되지 않았고 대개 단편적 소개에 불과해 남사당패를 비롯한 예인집단 형성과 기원을 밝히기는 어렵다. 게다가 남사당의 표기도 일관되어 있지 않은데, 남사당패의 한자표기에 있어 문세영이 저술한 『조선어사전』과 그 후의 『우리말 사전』에서는 南寺黨이라 적었고 이능화, 송석화의 저서 및 논문에서는 南寺黨 또는 南社堂으로 나오고, 일제치하 조선총독부 조사보고서에는 南寺黨으로 표기된 곳도 있다. 또 조선어학회가 지은 『조선말큰사전』과 이희승의 『국어대사전』에서는 南社堂으로 나오고 있다. 오늘날 남사당이라는 이름이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오면서 명칭에 대한 한자표기에 논란이 있는데 연희자들끼리나 고로(故老)들은 일반적으로 南社堂稗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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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 『민속문화와 민중의식』, 서울: 동문선, 1985.
______, 『중요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제40호 남사당』, 서울: 문화재관리국, 1968
전경욱, 『한국의 전통연희』, 서울: 학고재, 2004.
손태도, “손태도의 광대이야기”, <문화일보>, 2004. 10. 4.
윤광봉, 『유랑예인과 꼭두각시 놀음』, 서울: 밀알, 1994.
______, 『朝鮮後期의 演戱』, 서울: 박이정, 1998
이경엽, 「서남해 지역의 남사당 관련 민속연희와 연희자 연구」, 고전희곡연구, 제5호, 2002.
송정은, 「남사당 <풍물굿>에 내재된 현대적 수용가치에 관한 연구」, <움직임의 철학: 한국체육철학회지>, 제6권, 한국체육철학회, 1998,
김원민, 「남사당풍물의 변화양상 고찰」,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연희과, 2008.
장휘주, 「‘사당패’ 관련 명칭에 대한 사적 고찰」, 공연문화연구, 한국공연문화학회, 제13집,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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