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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이자겸의 난 , 고려 귀족사회의 전개와 동요 ( 분석, 원인, 발달과정등등 분석 )

저작시기 2010.02 |등록일 2010.02.06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한국사 - 이자겸의 난 ( 분석, 원인, 발달과정등등 분석 )

목차

Ⅰ. 들어가며

Ⅱ. 고려 귀족사회의 전개와 동요

Ⅲ. 이자겸의 난
ⅰ) 경원이씨 가문의 흥기
ⅱ) 변란의 발단
ⅲ) 변란의 전개

Ⅳ. 고려 귀족사회의 붕괴

Ⅴ. 나오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들어가며
이자겸은 고려 전반기 최고의 문벌가문이라 할 수 있는 경원이씨 가문의 일원으로서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어 외척이 되면서 여러 특권을 누렸던 인물이다. 또한 인종대에 변란을 일으켜 왕권의 권위에 도전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본 레포트에서는 이자겸이 일으킨 변란을 주제로 삼아 보았다. 우선 이자겸의 경원이씨 가문과 같은 문벌귀족가문이 형성될 수 있었던 배경과 귀족들이 분열하여 동요하게 된 계기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그런 후에 경원이씨 가문과 이자겸이 외척가문으로서 득세하게 된 배경과 이자겸이 일으킨 변란의 전개과정을 살펴보겠다. 또한 이자겸의 난 이후 고려전기의 귀족사회가 붕괴되는 상황 또한 간단히 짚어보고자 한다.

Ⅱ. 고려 귀족사회의 전개와 동요
성종(成宗)은 유교정치이념(儒敎政治理念)에 입각한 중앙집권체제(中央集權體制)를 구축하려 힘썼던 왕으로 특히 이 시기에 왕을 보좌하였던 관료들은 대체로 신라 육두품 출신의 유신(儒臣)들이나, 과거급제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들 중 경주 출신의 신라계 유신으로는 대표적으로 성종의 배향공신(配享功臣)이었던 최승로(崔承老)를 들 수 있는데, 그는 경순왕을 따라 고려에 온 이래로 줄곧 궁중에서 관직생활을 했던 자였다. 그밖에도 최량(崔亮), 최섬(崔暹), 설신우(薛神祐) 등 신라 6두품 출신의 유신들이 성종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과거에 합격한 유학자들도 당시 정계에 많이 포진하고 있었는데, 역시 배향공신 중 하나였던 서희(徐熙)와 백사유(白思柔), 유방헌(柳邦憲), 김심언, 정우현(鄭又玄) 등을 들 수 있다. 과거 출신자는 아니지만 유학자임이 분명한 자들도 여럿 있었는데 이들은 대개 지공거(知貢擧)를 지낸 자들이었으며, 왕융(王融), 이몽유(李夢游), 유언유(劉彦儒), 이양(李陽) 등이 대표적이다.

참고 자료

김갑동, 『고려전기 정치사』, 일지사, 2005.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12, 국사편찬위원회, 1993.
박용운, 『高麗時代史』, 일지사, 1991.
송은명, 『인물로 보는 고려사』, 시아출판사, 2009.
이기백, 『한국사신론』, 일조각, 2003.
하현강, 『韓國中世史論』, 신구문화사, 1989.

신수정, 「고려시대 慶源李氏 家門의 정치적 변화에서의 혼인망-이자의ㆍ이자겸 난과 관련하여」, 『韓國史學報』제21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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