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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학,중국고전산문]등태산기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10.01.31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고전산문 감상 비평문입니다.

목차

Ⅰ. 구양수(歐陽脩)와 취옹정기(醉翁亭記)
Ⅱ. <醉翁亭記> 원문 해석
Ⅲ. 고도의 주관적인 객관성

본문내용

취옹정기(醉翁亭記)는 구양수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구양수는 송대 문장가로써 이름이 높았고 한유(韓愈와 柳宗元)의 고문운동을 계승 완성한 사람이다. 한유는 당대에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주창하였지만 화려하고 의미에 상관없이 수식에 공들였던 문단의 4.6변려문을 혁파하지 못하였다. 송 대에 걸출한 문장가가 많이 나왔는데 구양수와 소식은 그들 중에 문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구양수는 간결체를 대표하는 인물이었고, 소식은 만연체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로 인하여 송나라 때 사람들은 소식의 문장보다 구양수의 문장을 더 크게 평가하였다. 문장에서는 구양수가 소식을 앞 서 있었다. 소식 본인도 서예로는 당시 최고의 반열에 우뚝 섰지만, 구양수의 간결체를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송대에는 구문소자(區文蘇字: 구양수의 문장과 소식의 서예) 이라 하여 최고의 문장가의 글을 소식이 쓴 것을 최고의 작품으로 여겼다. 취옹정기(醉翁亭記)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전해 내려온다.
구양수가 취옹정기(醉翁亭記)를 쓰고 너무 기쁘고 자랑스러워 고을에 여기저기 취옹정기(醉翁亭記)를 붙여 만일 한자라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였다. 감히 고치는 사람도 없었고 설사 고쳤어도 구양수에 맘에 흡족한 글은 나오지 않았다. 구양 수 스스로 흡족해 하던 차에 나무 꾼 하나가 취옹정기(醉翁亭記)를 고치겠다고 나섰다. 태수는 설마 하면 나무꾼을 불렀다. 그런데 나무꾼의 말을 듣고 구양수는 무릎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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