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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과연 그가 백제 멸망의 원인인가?

저작시기 2010.01 |등록일 2010.01.28 한글파일한글 (hwp) | 18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의자왕과 백제멸망의 원인에 대한 글이며,
역사의 왜곡과 의자왕의 재조명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Ⅰ. 왜 의자왕을 선택하였는가?

Ⅱ. 의자왕이 왜 역사 왜곡의 희생양인가?
① 의자왕에 대한 일반적 인식
② 의자왕에 대한 오해
1) 삼천궁녀로 상징되는 의자왕의 사치, 정말 백제 멸 망의 계기가 되었는가? 그리고 의자왕은 사치와 향 락에만 빠져 살았는가?
2) 의자왕은 삼천 궁녀를 둔 적이 없다.
* 삼천 궁녀는 완전한 허구
* 삼천 궁녀의 존재가 허구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 어떻게 해서 삼천 궁녀에 대한 이야기가 생겨난 것일까?
3) 너무도 억울한 의자왕, 실제로는 어떤 왕이었을까?

Ⅲ. 의자왕과 백제 멸망의 원인
① 의자왕대의 권력 강화
② 의자왕의 측근 세력
③ 대외 관계의 변화

Ⅳ. 의자왕의 재조명

Ⅴ. 정리하면서

<참고 문헌>

본문내용

모두가 알다시피 의자왕은 백제의 31대왕 즉, 백제의 마지막 왕이었다. 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로 태어나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애가 깊어 ‘해동증자(海東曾子)’라 불렸다. 의자왕은 어렸을 때부터 용기가 남달랐고, 결단성 또한 뛰어났었다. 왕위 초기에는 나라를 잘 다스리고, 훌륭한 정치를 펼쳤었다. 하지만 이러한 보편적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훗날 삼천 궁녀와 함께 사치와 향락을 즐기다가 백제를 멸망하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나라 통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사치를 즐기기에만 바빴다고 일반인들은 알고 있다. 그리고 삼천궁녀와 함께 낙화암에서 떨어져 함께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삼천 궁녀와 함께 낙화암에서 떨어져 함께 죽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을 정도로 널리 퍼져있다.
그 당시에 정말로 삼천 명이라는 궁녀들과 의자왕이 함께 지냈을까? 그리고 삼천 명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어디서 함께 지내며 놀 수 있었을까? 과연 삼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정말 강에 빠져서 죽었을까?

② 의자왕에 대한 오해

1) 삼천궁녀로 상징되는 의자왕의 사치, 정말 백제 멸망의 계기가 되었는가? 그리고 의자왕은 사치와 향락에만 빠져 살았는가?

지금껏 백제의 삼천 궁녀로 상징되는 의자왕의 사치는 백제 멸망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런 사정을 연상하게 하는 기록은 『삼국사기』<백제본기>의 의자왕 16년 조항을 통해 알 수가 있다.

"봄 3월에 왕이 궁녀들을 데리고 음란과 향락에 빠져서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으므로 좌평 성충이 극력 말렸더니 왕이 성을 내며 그를 옥에 가두어 버렸다.
이로 말미암아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는 구절이 있다. 이 기록에서 의자왕은 충신의 충언조차도 듣지 않는 등 국정을 도외시한 채 음란과 향락에 빠져 지내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데, 거기에는 그의 이런 실정으로 백제가 멸망하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참고 자료

구본창, 『패자의 역사』, 서울:채륜, 2008
서혜정, 『의자왕대의 정세 변동과 대외 정책』, 청주:한국교원대학교, 1996
엄기표, 『백제왕의 죽음』, 서울:고래실, 2005
이기동, 『백제의 역사』, 서울:주류성, 2006
이덕일 외, 『우리역사의 수수께끼』, 서울:김영사, 1999
이도학, 『살아있는 백제사』, 서울:휴머니스트, 2003
임병주, 『한권으로 읽는 삼국왕조실록』, 서울:들녘, 1998.
임영진, 『백제의 영역 변천』, 서울:주류성, 2006
한국역사연구회, 『문답으로 엮은 한국 고대사 산책』, 서울:역사비평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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