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고구려고분벽화

저작시기 2009.04 |등록일 2010.01.25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고분벽화에 대한 상세한 내용입니다.

목차

서론
고분벽화정의
고분벽화의 분류
고분벽화의 주제별 특징
끝내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고대 사회의 초기에는 사람이 죽은 뒤에 가는 세상이 현재의 세상과 모든 점에서 같다고 보았다. 때문에 고대에는 지배자들이 현세에서의 신분과 지위를 내세에도 누리기 위해 죽으면서 처첩과 시종, 관리와 무사, 노비를 무덤에 함께 묻게 하였다. 이를 순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죽은 이의 세계에서는 현세의 사람과 물건이 별 쓰임새가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자 무덤 안에는 실물대신 모형이 묻히거나, 더 나아가 생전의 영광을 기리고, 누리고 싶은 내세의 삶을 형성화한 그림이 그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경우, 신라와 가야에서는 모형을 껴묻는 습속이 오랫동안 지속된 반면, 고구려에서는 일찍부터 무덤 칸 안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행하였다. 더욱이 삼국과 가야의 고분 벽화는 한국 고대 사회의 주인공들이 직접 남긴 유적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깊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사 연구에 있어서 고분벽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마치 현대의 매스컴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삼국사기가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기록으로 나타내 주는 신문이라면, 벽화는 당시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텔레비전 영상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몇 안 되는 현대미술의 족보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민족이다. 우리 선조가 1,500년 전에 그린 그림이 아직도 남아 숨 쉬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슴 뿌듯한 자부와 긍지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고구려라는 1500년 전에 무너져 내린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이 살던 땅에는 벽화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다. 옛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과 평양성 주위에 빽빽이 남아있는 고구려인의 고분에는 아직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고구려인은 돌무지무덤 양식에서 어느 시점부터 돌방무덤 양식을 채택하기 시작한다. 이 돌방무덤의 벽면은 초기에는 별다른 활용이 이뤄지지 않다가 서서히 고구려인의 현세와 내세를 담는 그릇이 된다. 이 고분과 벽화들은 박제가 아니다.

참고 자료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전호태, (주)사계절출판사, 2000년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 김용만, 바다출판사, 1999년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