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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서적을 읽고

저작시기 2009.01 |등록일 2010.01.25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一九四五 ~ 四六년에 있었던 나의 경험담,
하루 하루와의 만남
이라는 고고학관련 서적을 읽고 쓴 독후감입니다

목차

(1) 一九四五 ~ 四六년에 있었던 나의 경험담을 읽고
(2) 하루 하루와의 만남을 읽고
(3) 정리하고 나서....

본문내용

한국 고고학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들어본 적이 없던 터이고, 더군다나 두 편의 수필형식의 글을 통해서 고고학사를 정리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수필 중간 마다 이해 안되는 구절이 많았고, 중요한 사건이나 의의를 찾아내는데 어려움이 많았으며, 몇 번 정독 한 뒤에나 겨우 정리가 되는 듯 했다. 또 유적명이나 단어에 한문이 많았으며, 고고학적 용어가 군데군데 기재되있어서 수필형식의 글임에도 글을 읽는 자체에 어려움이 있었다. 수필을 토대로 역사적인 내용을 이끌어 내는 레포트는 처음이라 어떤 식으로 정리를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두 편의 수필형식의 글을 따로 요약 ・ 정리한 다음에, 간략한 정리를 한 후에 내 생각을 기록하기로 하였다.

(1) 一九四五 ~ 四六년에 있었던 나의 경험담을 읽고
필자는 1931년 9월부터 1946년 6월까지 조선에 살면서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와 조선 총독부박물관 경영에 참여했고, 일본 패퇴 후 10개월 동안은 한국국립박물관 개설과 동관의 신라고분 발굴 조사에 협력했다. 1941년 당시 박물관의 경영이나 조선각지에서 발견한 매장문화재의 처리, 고적 및 고건축물의 수리 보존, 조선 문화재 지정 따위의 업무를 맡던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주임을 맡았다.
그 후 반년 정도 후 일본의 태평양전쟁 돌입으로 총독부 박물관 역시 위기가 닥쳤다. 전쟁으로 인해 진열품의 방어책이 필요해지자 필자는 목조의 구조인 진열관 대신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대형 방공호를 지어달라고 건의하였으나, 박물관의 경영이나 고적조사 사업에 냉담했던 총독부의 담당자에 의해 거절당하게 된다. 차선책으로 생각한 것이 안전한 지방에 소개(疏開)하는 것이었다. 당시 총독부 박물관에는 경주와 부여에 두 개의 분관이 있었다. 두 곳 모두 항구로부터 멀리 있었고, 군사시설이나 중공업 지대와 무관한 곳이었으며, 특히 경주 분관에는 철 골조의 콘크리트로 지은 창고식 건물인 「금관고」가 있어서 그 지하실이 적당한 장소로 여겨졌다. 그 때 서울에서 경주나 부여로는 철도가 유일한 교통로였는데 그 경로를 통해 모든 관원이 교대로 반을 조직하여 1천 점에 이르는 진열품을 두 분관에 소개하였다. 전쟁이 위급한 국면으로 치닫게 됨에 따라, 총독부 박물관의 직원은 “모조리 경주 분관과 부여 분관으로 이전 근무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따를 수 밖에 없었다.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 전면 항복한 후 조선인들은 일본인이 경영하던 곳 일체를 접수하기에 나섰다. 그리고 총독부박물관을 접수하기 위해 김재원 박사가 나섰다.

참고 자료

一九四五 ~ 四六년에 있었던 나의 경험담
하루 하루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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