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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갑오농민전쟁

저작시기 2005.12 |등록일 2010.01.20 한글파일한글 (hwp) | 16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서론
1.농민전쟁 인식의 변화
(1)농민전쟁시기
(2)1995년~1910년
(3)1910년~1945년
(4)1945년~1950년대
(5)1960년~1970년대
(6)1989년~1990년대
2.몇 가지 논란이 되는 문제들
(1)농민전쟁의 주체세력
(2)남․북접과 농민전쟁
(3)갑오개혁과 농민전쟁
3.집강소 성격에 대한 연구경향
결론

본문내용

서론
19세기 후반 조선봉건사회는 농업생산력 및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에 따라 지주제가 확대되고, 농촌사회는 지주·부농·소농·빈농·임노동자라는 다양한 계층으로 분화되고 있었다. 특히 지주제의 모순과 봉건적 수취체제의 제반 모순에 따라 직접생산자인 농민에게 부담이 가중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1860년대부터 군현을 단위로 한 농민항쟁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농민항쟁에 대해 정부는 봉건지배체제의 두 축인 지주제와 신분제의 모순을 개혁하지 않고 단지 현상적인 부세제도의 부분적인 수정을 통하여 이를 무마하려 했다. 한편 개항을 계기로 제국주의 침략을 받으면서, 종래의 봉건적 모순은 더욱 심화·확대되어갔다. 개항 이후 외세에 대한 집권층의 타협과 굴복으로 정부재정은 곤란을 겪게 되고 그것은 농민의 부담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지배층을 분열과 농민생활을 외면한 정쟁의 연속을 가져왔다. 농촌지식인들은 경제적 몰락으로 정치의식과 지도력이 향상되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농민세계의 위기의식은 팽배해져갔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농민들의 정치․사회의식은 성장해 갔으며 이들은 자본제 상품의 침투와 봉건지배계급의 수탈로 몰락을 강요당하던 소상품생산자 및 소상인층과 결합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발생된 갑오농민전쟁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학자들간에 적지 않은 의견 차이를 보이는데, 본고에서는 먼저 갑오농민전쟁이 시기별로 어떻게 인식되어 왔는지에 대해 그 변화양상을 살펴본 다음, 몇 가지 논란이 되는 문제에 대하여 좀더 세부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84년 갑오농민전쟁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는 집강소의 성격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경향을 살펴본다.

1.농민전쟁 인식의 변화
(1)농민전쟁시기
①농민군
농민군은 자신의 정당성을 알리는 포고문, 싸움에 동참하도록 촉구하는 격문, 정부관리에게 보낸 원정, 지방관청에 보낸 통문 등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많은 문서를 남겼다. 포고문을 보면 이들은 봉건적인 윤리체계․가치규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곧이어 정부 관리들의 죄상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자신들의 목표를 봉건적인 윤리체계나 가치규범의 재건에 결부시키지 않고 보국안민으로 설정하고 있다.

참고 자료

김양식 ,<1,2차 전주화약과 집강소 운영>《역사연구》2, 1993.
<전주화약기 집강소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사학지》26, 단국대사학회, 1993.
신용하,<甲午農民戰爭 시기의 農民執綱所의 設置>《韓國學報》11.
《동학과 갑오농민전쟁 연구》,일조각,1993.
김은정외,《동학농민혁명 100년》, 나남출판, 1995.
한국역사연구회,《1894년 농민전쟁연구1․2》, 역사비평사,1991,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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