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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노력 -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저작시기 2010.01 |등록일 2010.01.20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Ⅰ. 개간사업에 힘쓰다
Ⅱ. 정확한 농시를 위한 과학기구를 설치하다
Ⅲ. 농사직설 간행하다
Ⅳ. 영토를 확장하다
Ⅴ. 새로운 세금제도를 실시하다

본문내용

Ⅰ. 개간사업에 힘쓰다

경상남도 남해는 조선시대 서울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변방 중에 하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는 평산들이 있다. 이곳은 농업을 일구고자 했던 세종의 고심이 서린 현장이기도 하다.
고려 말 이후 왜구에 노략질로 버려졌던 이곳을 세종은 다시 개간하도록 했다. 그 넓이는 약 95만여 평방미터. 이 곳이 농경지로 정비되었다. 세종당시에 개간사업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조선 초기에 개간사업에 주로 사용되었던 농기구는 따비, 가래 등으로 이 농기구들은 당시 최고수준의 것이었다.
엄청난 인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개간사업은 버려졌던 섬과 해안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경작지 확대를 위한 노력이었다.

그렇다면 세종이 이렇게 개간사업을 펼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태양의 흑점 활동을 통해 당시의 온도를 추정할 수 있었다.
왕조실록세종시대인 1418년부터 1450년까지 태양흑점 관측기록이 하나도 없고 주변 150년 기간동안 흑점이 관측되지 않았다. 바로세종시대가 소빙하기 시작되는 시점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당시 흑점이 관측되지 않았다는 것은 일조량이 낮았다는 의미이다.
이 자료를 근거로 당시의 농업환경을 알아보기 위해 천문연구원을 찾았다. 천문기록을 이용해 세종시대 한반도의 기온을 알아보았다. 태양 흑점의 활동기록을 통해 당시의 기온과 일조량을 추정할 수 있었다.
실제로 세종시대는 가뭄의 연속이었다. 세종즉위 이후 10년간 단 한해도 가뭄이 들지 않은 해가 없었다. 가뭄과 흉작은 그대로 백성들의 고통이 되었다. 흙을 파먹는 백성이 생겨날 정도였다. 세종 6년 강원도의 경우 전체가구의 3분의 1이 없어지고 농토의 절반이 폐허가 되었다. 농업이 국가경제의 기반이던 시대 연이은 흉년은 그대로 국가적 위기였다. 개간으로 경작지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불안정한 기후로 인한 농업의 황폐화는 젊은 임금 세종에게 큰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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