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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림정치와 유학의 발달에 관한 고찰

저작시기 2008.11 |등록일 2010.01.19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교양이었고, 시일이 꽤 지나 싸게 내놓습니다.

목차

1.머리말
2.사림의 개념
3.사림의 정치의식-사상을 중심으로
4.사림의 향촌지배
5.사림의 의의
6.꼬리말

본문내용

향규(鄕規)는 유향소를 중심으로 향촌의 제반 운영을 규정한 객관화된 자치법규였다. 이 향규의 대상자는 유향소에 참여한 사족 즉 향원은 물론이요 비향참자, 향리, 관속까지도 포괄하였고, 가족과 향원간의 윤리, 유향소의 운영, 향리 및 관속에 대한 통제 그리고 하층민의 침학이나 수령과의 관계 등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향규는 사림이 가지고 있는 유교윤리를 그대로 향촌사회에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향소와 향규 이외에도 사림의 향촌지배를 공고히 해주고 유교윤리가 향촌사회까지 공고히 될 수 있도록 도와준 또 다른 기구는 바로 서원이었다.
서원은 사람들이 향촌 차원에서 구축한 교육 및 이념기구로서 성리학 원리를 연구, 심화함으로써 사림세력을 이념적으로 재생산하려는 기본목적을 갖고 있었다. 서원의 이러한 성격이 유향소와 의미를 달리했던 이유는 향촌의 사림들이 향유했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기본적으로 문사적(文士的)지식에 의존했던데 근거한다. 문사적 지식이란 일차적으로 성리학에 대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이를 내면화하고 보편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실천적 지식까지도 포함하였다. 말하자면 유교적 공(公)의 의미를 이해하고 실천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도덕적 교화력이 그것이다. 이는 향촌에 대한 사림의 헤게모니적 지배에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이 문사적 지식은 주ㆍ객관적으로 양반들의 지배적 지위를 후원하는 중요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성리학적 근본주의자로서 자신들의 지배적 자격에 고도로 민감했던 사람들에게 교육과 수기의 공간으로서 서원의 의미는 각별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이 서원의 지배적 함의는 곧 지배계급으로서 그들의 존재의의와 임무를 의식화하여 성리학적 지배의 공공성을 확보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림의 노력과 향촌사회에 대한 지배논리로 인해 서원은 조선후기 폐기되기 이전까지 향촌사회를 지배하는 수단이었으며 우리나라에는 많은 수의 서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 외 향약 역시 사림의 향촌지배를 구체화시켜주는 하나의 기구였다고 할 수 있다.

5.사림의 의의

정치사상학적으로 혹은 유교적 발전론에 근거하여 사림이 가지는 의미는 학문적 영역이었던 유학을 생활실천의 윤리로 그리고 실천 가능한 학문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향촌사회까지 전파하여 온 나라가 유학이라는 실천적 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앙정치에서 사림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이는 이들의 또 다른 성격인 공공성에서 찾을 수 있다. 사림의 성격은 실천적이기도 하지만 공론적이기도 하였다. 조선 중기 사림의 공론정치는 공론의 의미를 당위적으로 인정했을 뿐 아니라 이를 정치운영의 질료로서 혹은 의사결정의 자료로서 적극적으로 요청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론소재가 다원화되고 공론수렴의 필요성이 증대된 것은 사림정치의 체계적 요구 였다.
조선전기의 공론이 소재가 왕과 재산에만 국한시키는 경향이 뚜렷했고, 그나마 제도화된 공론소재로 인정된 언관의 기능이 훈구중심의 권력 집중적 구조 속에서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였는데 사림의 등장은 이러한 상황을 혁파하고 개혁해 나갔다. 사림은 공론의 소재를 확장하고 이를 적절히 수렴하는 것을 그들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이다.
또한 사림은 권력을 견제하고 비판을 제도화하였다. 권력의 독점과 거기에 내재된 권력의 사사화(私事化)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은 사림이 갖고 있던 뿌리 깊은 정치사회적 속성이었다. 사림정치의 권력견제 속성이 가장 잘 반영된 사례는 단연 언론제도였다. 언로의 확장 및 다양화로 대변되는 사림정치의 언론 체계는 공론수렴기능과 함께 군주 및 권신들을 견제할 수 있는 직접적인 제도적 장치였다. 이처럼 사림은 사상적 측면뿐만 아니라 실질적 정치적 측면에 있어서도 그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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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교(2001), 『조선후기 향촌지배정책 연구』, 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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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1998), 『조선양반사회연구』, 일조각.
이태진(1994), 「집권관료체제와 양반」,『한국사 연구입문』, 한국사연구회 편, 지식 산업사.
정진영(1998), 『조선시대 향촌사회사』,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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