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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 논문]고려 초기 왕실 족내혼의 경향

저작시기 2009.09 |등록일 2010.01.17 한글파일한글 (hwp) | 22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사학과/역사교육과 학사 졸업 논문입니다.
한국중세(고려)시대를 배경으로해서 쓰여진 논문입니다.

목차

I. 머리말

II. 왕실 족내혼의 성립과정
1. 고려 태조(太祖)의 혼인
2. 태조 자식들의 혼인정책
3. 족내혼(族內婚)의 성립
III. 태조 자손들의 혼인정책의 추이와 왕실세력
1. 족내혼(族內婚) 체제의 강화
2. 황주 황보(皇甫)씨系와 충주 유(劉)씨系의 왕실세력
IV. 족내혼 출신 왕비들의 성(姓) 계승 문제와 족내혼의 이유
1. 고려 초기, 공주 출신 왕비들의 성씨 계승
2. 족내혼의 이유

VI. 맺음말

본문내용

I. 머리말
족내혼(族內婚)이란 가까운 친척들끼리 혼인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성리학이 정착한 조선 시대 이후, 지금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혼인형태는 법적, 윤리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고려 왕실에서는 원나라 간섭기에 얼마간 제한되기는 하였지만 제1대 태조의 자식들로부터 제34대 공양왕의 자식들까지 왕실 내부에서 혼인을 이루는 족내혼이 성행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성리학을 근본으로 삼던 조선시대 유학자들에게 고려 왕실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그들의 족내혼은 폄하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왕실 내부의 족내혼의 역사는 고려에 와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다. 족내혼의 역사는 신라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위작(僞作)의 논란이 있는 김대문의 <화랑세기(花郞世紀)>의 제23대 풍월주 양도공 조(條)를 살펴보면, 양도의 어머니 양명공주(陽明公主)가 이부동복 누이인 보량(宝良)과 혼인시키려 하자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나중에 승낙하는 기록이 나온다. 이에 양명공주는 “참으로 내 아들이다. 신국(神國)에는 신국의 도(道)가 있다. 어찌 중국의 도(道)로 하겠느냐”고 칭찬하였다. 족내·근친혼을 중국과는 다른 ‘신국(神國)의 도(道)’라 표현할 만큼 족내혼이 성행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족내혼의 이유와 그 실상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랐던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 법흥왕과 진흥왕 시기를 거치면서 불교가 왕실 깊숙이 자리 잡았고, 그 속에서 성골 의식이 싹 틔었다. 신라 시대에 이루어진 족내혼은 바로 이 골품제도와 연관성이 깊다. 즉, 신라는 중앙집권화 이후 김씨(金氏) 왕권을 지속시키기 위해 족내혼이라는 방법을 취했던 것이다. 다음 왕위를 이을 특수집단, 즉 ‘성골(聖骨)’을 유지하기 위해 남매간, 숙질간의 혼인이 이루

참고 자료

정용숙, 1988, 『고려왕실족내혼연구』, 새문사
권순형, 2006, 『고려의 혼인제와 여성의 삶』, 혜안
김갑동, 2001, 「고려왕실은 왜 근친혼이 있었는가?」, 내일을 여는 역사
이정란, 2003, 「고려시대 혼인형태에 대한 재검토」, 서울시립대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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