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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북진정책

저작시기 2008.12 |등록일 2010.01.09 한글파일한글 (hwp) | 20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고려시대 북진정책의 의의와 실제 어떻게 북진정책을 실행해왔는지 그 과정을 살펴봄과 동시에 주변국들과의 관계까지 포괄적으로 짚어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태조 왕건의 북진 정책

Ⅲ. 고려의 북진정책과 거란의 남진정책의 충돌

Ⅳ. 고려와 여진
Ⅳ-1. 은위병용
Ⅳ-2. 금의 건국과 관계의 변화
Ⅳ-3. 결 과

Ⅴ. 고려와 몽고
Ⅴ-1. 1차 침입
Ⅴ-2. 2차 침입
Ⅴ-3. 3차 침입
Ⅴ-4. 4차 침입
Ⅴ-5. 5차 침입
Ⅴ-6. 6차 침입
Ⅴ-7. 결 과

Ⅵ. 공민왕의 국권회복과 영토확장
Ⅵ-1.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의 혁파
Ⅵ-2. 동녕부(東寧府) 정벌

Ⅶ. 고려의 북진정책의 의의

본문내용

Ⅰ. 서 론
고려의 태조가 건국 초부터 북진정책을 실시한 이래 고려는 거란, 여진에 이어 몽고(원)의 침입을 겪게 된다. 침입을 당하면서 국토가 유린되기도 하고 영토를 확장하기도 했다. 과연 고려의 북진정책은 성공한 것인가?
태조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국호를 「고려」라 정하고, 연호를 천수(天授)라 하여 건국이념인 북진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태조이후 정착된 고려인의 북진의지는 건국 초 3차에 걸쳐 침입한 거란군을 격퇴시키고, 여진정벌을 통한 9성 개척으로 구현되었다. 이후에도 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몽고에 대항하여 40년 동안 굴하지 않고 고려인의 자주성과 상무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으며, 려말에는 정명정책으로 나타났다.
Ⅱ. 태조 왕건의 북진 정책
Ⅱ-1. 북진 정책(北進政策)
고려 태조 왕건이 이룩한 역사적 업적은 후삼국의 통일과 북진정책의 추진이었다. 그의 북진정책은 옛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를 수복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왕건은 분열된 후삼국의 통일이라는 현실로 인해 옛 고구려 영토를 모두 수복하겠다는 원대한 목표까지는 달성하지 못했다.
고려가 건국되면서 평안도 일대에는 여진족들이 부락단위로 산거(散居)하게 되어 평안도와 황해도 북쪽지역은 미확정 국경지대로 변모해 있었다. 태조 왕건이 즉위하면서 평양을 북진정책의 전초기지로 삼게 된 명분도 바로 황해도 북부와 평안도 지역의 황폐화였다.
평양을 중심으로 황해도 북쪽과 평안도 일대가 황폐하여 여진족이 출몰함으로써 변방지역의 피해가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라의 울타리를 튼튼히 하여 후세의 이익이 되게 하기 위해 그곳으로 백성을 이주시켜야 한다는 것이 태조
왕건의 판단이었다. 왕건은 이주백성들의 안전을
위해 평양을 중심으로 서북방 지역에 즉 대동강
이북과 청천강 이남지역에 다음과 같이 성책
(城柵)을 축조하였다.
왕건의 성책 축조는 고구려 고토의 수복과 북번인
(주로 거란을 뜻함)의 침략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실시되었다. 왕건의 거란에 대한 인식은
적대적이었다. 발해를 형제국으로 인식한 고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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