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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수성守成 리더십을 읽고서...

저작시기 2008.09 |등록일 2010.01.08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세종의 수성守成 리더십을 읽고 쓴 감삼문

목차

없음

본문내용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왕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세종을 생각할 것이다. 그 이유를 물으면 한글을 창제한 백성들을 가장 사랑한 왕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대 왕들 중에 광개토 대왕과 더불어 ‘대왕’의 불리고 더불어 ‘성군’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세종이 우리나라 최고의 성군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세종이 ‘성군’이라고는 알고 있지만 왜 그렇게 불리는 지, 세종이 어떤 인물인지, 한글은 어떻게 그리고 왜 만들었는지, 세종 대왕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인 위민정치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SERI 연구에세이 중에 유독 ‘세종의 수성 리더십’이란 제목이 눈에 띄었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 나는 세종이 ‘성군’으로 불릴 수 있었던 그의 ‘위민 정치’에 대해서, 그의 성품과 정치 스타일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조선시대의 ‘CEO‘라고 할 수 있는 ‘국왕`으로서의 세종에게서 현제 ’CEO`가 가져야 할 것들에 대해서 배울 수 가 있었다. 이 책에선 세종의 성품과 국왕으로서의 자질, 외교능력과 정책들에 대해서 자세히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 가장 먼저 세종 대왕의 ‘국왕’으로서의 자질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조선시대는 이전 왕조와 마찬가지로 장자 계승이 원칙으로 되어 있음에도 셋째 왕자인 충녕 이 세자인 양녕을 제치고 왕이 될 수 있었을까? 이 일에 대해선 흔히 양녕이 자신보다 충녕이 더 왕으로서 자질이 있다고 판단해서 스스로 물러 낫다 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선 그 이유를 태종에게서 찾았다. 태종은 지금까지는 혁명과 건국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시대였지만, 이제 건국한지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더 이상의 ‘마상의 정치’를 계속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양녕은 몇 가지 결격 사유가 있었다. 먼저 양녕은 조선조 정치의 주체이자 오피니언 리더인 사대부의 인심을 잃었다. 그리고 부왕인 태종으로부터 공정한 태도와 정치적 독자성,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의심 받았다. 그것은 태종이 생각한 왕이 되기 위한 조건에 어긋나는 것 이었다. 반면에 셋째 왕자인 충녕은 태종과 그 시대 신료들이 생각하고 있는 ‘국왕의 자격’을 갖춘 인물로 평가 되었다. 태종은 충녕을 왕세자로 삼는 이유로 학문, 정치의 대체를 앎, 후계자(문종)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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